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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나라의 경제와의 전쟁

Brazil-Economy

 21세기 남미 유일의 성공신화 브라질, 이번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 4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공개할 기회가 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이하 리우) 올림픽이 시작된 것이다. 각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리우로 향했고, 전 세계 또한 기다리던 축제에 들뜨고 있다.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위축된 경제로 인한 빈곤의 심화는 조직범죄의 증가로 이어졌고 지카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으며, 환경오염도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할 수준이었다. 이러한 경제, 치안, 보건, 환경에 걸친 방대한 문제를 마땅히 해결해야 할 브라질 정부는, 정치적 위기를 맞아 당쟁을 반복하느라 국정 운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쯤 되면 브라질이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전까진 남미에서 한 번도 올림픽을 연 국가가 없었다는 점이 브라질에게 올림픽 유치권을 넘겨준 가장 큰 이유이지만, 당시 급성장하고 있었던 브라질의 경제 상황도 한 몫을 했다. 올림픽 개최국을 선정할 2009년 당시만 하더라도, 브라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했고, 그전에 이미 골드만삭스에 의해 신흥경제국으로 꼽힐 만큼1 경제규모가 커진 상황이었다. 그렇게나 촉망받던 브라질은 현재 경제위기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리고 사회 제반 문제에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암담한 남미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성장했고, 잠시 찬란하게 빛나다가 추락해버린 브라질의 다이나믹한 역사는 세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남미의 폐해

“용어나 개념, 기관은 곧잘 개발자나 설립자의 뜻과 상관없이 쓰이기 마련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통찰력 있는 이 명언은, 그의 사후 약 20년 후 생성된 용어, “워싱턴 컨센서스”를 염두에 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러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오용으로 브라질의 초기 경제위기를 설명하려는 학자들이 상당하다. 우선 이 컨센서스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영국 출신 정치경제학자인 존 윌리엄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공산권 붕괴 이후 동구 국가의 경제개혁에 도움이 될 만한 대책을 제시했다. 그 대책이란 국가 기간 산업 민영화,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 재정건전화, 변동환율제 도입, 재산권 보호 등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10가지 방법이었다. 당시 윌리엄슨은 워싱턴에 있는 미 정부, 의회, 경제기구 등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릴 만하다며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실제로 미 재무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가 워싱턴에서 이 방법에 대해 합의를 하면서 세 핵심기구의 기조로 정립되었다. 윌리엄슨은 당대 경제학자의 주류의견을 종합하여 정리한 후, “이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제시에 그쳤으나, 워싱턴 트라이앵글은 이것을 중남미에 직접 “처방”을 내리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 재무부장관이었던 니콜라스 브래디는 이른바 브래디 플랜으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라틴아메리카 채무국들에게 채무 일부를 변제해 주고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에,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개혁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특정한 경제정책을 도입해야한다는 세부사항이 없어 조건이 모호하긴 했지만, 중남미 국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기꺼이 수용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1990년대 초반에 각국은, 비록 속도는 달랐지만,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수입 관세를 낮게 조정하며 세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경제가 활성화되니 자연스럽게 임금 수준이 회복되었으며 인플레이션도 잠잠해졌다.2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남미 국가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수입에만 신경쓰다보니 수출에는 소홀하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국가가 국내 통화가치를 미국 달러화 가치와 동일하게 또는 인위적으로 높게 하여 수입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을 폈고, 수출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고정환율제는 단순히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투기 문제도 발생시켰다. 더군다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가 확립되기도 전에 이루어진 민영화는 독점기업만 양산할 뿐이었고, 매각과정에서는 부정부패가 속출했다. 제도보다 앞선 이론의 도입은 재앙을 낳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물가는 또다시 상승했고,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브라질의 상황도 여느 주변 국가와 다르지 않았다. 1989년 당선된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 대통령 역시 물가안정화 정책과 함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려고 애썼다. 초반에는 물가가 안정되는 듯 했다. 대통령직을 처음 역임한 해인 1990년에는 물가상승률이 약 3,000퍼센트에 달했으나, 이듬해에는 430퍼센트로 낮출 수 있었다.3 그러나 재정건전화에 실패하여 적자는 쌓여만 갔고, 이 때문에 1993년에는 또다시 2,000퍼센트라는 엄청난 수치로 회귀하였다. 콜로르 다음 정권에서 막대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재무부장관 페르난두 엔리크 카르도수는 이 반인플레이션 정책의 핵심 인물이었다. 카르도수는 당시 브라질 화폐인 크루제이루화를 헤알(Real)이라는 새로운 통화로 대체했고, 헤알화의 환율을 미국 달러화에 거의 1:1의 비율로 연동시켰다. 이러한 고정환율제의 본래 의도는 급속히 떨어지는 브라질의 화폐가치를 고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슈퍼마켓 상품의 가격표가 쇼핑을 하는 중에도 실시간으로 바뀔 정도로 크루제이루화는 빠르게 폭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폐단위를 대폭 축소한 헤알화를 도입하고, 생필품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물가상승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카르도수의 이른바 “헤알 플랜”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히지만 이 역시 찰나일 뿐이었다. 선물과도 같던 고정환율제는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변모했고, 헤알화의 가치는 20% 하락했으며 인플레이션은 또다시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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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알 플랜으로 화폐단위가 1000분의 1로 간소해져 가격표를 교체하는 브라질 시민 (출처 : 이코노미스트)

새끼 손가락이 없는 남자가 일으킨 브라질

콜로르가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아쉽게 패한 노조위원장 출신의 후보가 있었다. 그는 일곱 살부터 거리에서 땅콩과 오렌지를 팔아야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었고, 열네 살부터는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빈곤한 삶을 살았지만 당시 브라질 에서는 그 빈곤이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평범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청년은, 직접 노동자당을 창설해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바로 룰라 다 시우바다. 사실 그가 속한 노동자당은 “강한 정부”를 지향했다. 그동안 노동자당의 공약은 민간기업 국영화, 확장 재정, 토지 재분배 등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룰라는 당의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개혁을 시작했다. 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정적인 보수파를 등용하기도 했다. “가장이 되면 총각 때와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들은 대놓고 못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룰라는 실용주의 대통령이었다.

룰라는 우선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한 경제개혁을 따랐다. 룰라 이전 카르도수 정부는 IMF로부터 300억 달러의 차관을 받으면서 GDP의 3.75%를 재정 흑자로 유지하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룰라는 이 협약내용을 지속적으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한술 더 떠 목표치를 0.5% 올려 4.25%로 설정했다. 그리고는 보수적인 인사로 경제 분야 행정부서를 꾸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긴축 재정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이와 함께 그가 병행했던 것은 경제 질서를 제도적으로 확립하여 시장 거래를 촉진시키는 것이었다. 재산권을 보다 강력하게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고, 중소기업 수출세는 면제해주기도 했으며, 3달 걸리던 기업설립 절차를 3일 만에 끝내도록 간소화하였다. 이러한 제도 마련은 해외 기업과 거래할 수 있는 국내기업을 자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었고, 중국, 미국과 각각 수출확대, 투자유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무역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2008년 순외국인 직접 투자는 380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받은 외국인 투자 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금액이었다. 투자 활성화는 물가안정화를 동반한다. 콜로르, 카르도수 대통령이 그렇게 노력했어도 완전히 잡을 수 없던 인플레이션을, 룰라는 잡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룰라가 마냥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만 좇는 따라쟁이였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브라질 내 지역차원의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프로그램을 창안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4 볼사 파밀리아는 빈곤가정에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현금을 거저 주진 않았다. 수혜가정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했고, 좀 자라면 직업교육을 받도록 해야 했으며, 해마다 예방접종도 시켜야만 했다. 조건을 준수하기로 약속하면, 남성가장이 아닌 어머니에게, 직불카드에 현금을 충전하여 생계비를 지급하였다. 시행 10년 후 발표된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볼사 파밀리아 기금의 94%가 가장 가난한 40%의 사람들에게 골고루 지급되었고, 지급된 금액의 대부분이 식량, 의류, 학용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즉, 볼사 파밀리아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자녀교육을 조건부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단순히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과는 차별화된,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시도였다. GDP의 0.6%도 안 되는 예산으로 극빈층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지니계수를 15% 감소시킨 이 성공적인 프로그램5은 주변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 콜롬비아, 니카라과 등 몇몇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를 모방하였고, 이 역시 해당 국가의 빈곤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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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을 담아 지급된 볼사 파밀리아 직불 카드 (출처 : Calendario Bolsa Familia)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위기

물가안정과 빈곤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룰라의 인기는, 경제가 성장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2006년 재선은 거뜬했으며, 2010년 퇴임할 당시 룰라의 지지율은 87%에 육박할 정도였다. 룰라는 그렇게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의 교체라고 말하면서 세 번째 선거에 도전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당의 후보인 지우마 호세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그녀는 당선되었다. 그러나 호세프는 불운했다. 그녀가 집권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브라질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게 자원이란 축복이자 저주이다” 금융 역사가 에드워드 챈슬러가 최근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의 핵심 내용이다. 챈슬러가 조금만 더 일찍 칼럼을 썼다면, 브라질의 상황은 달라졌을까? 브라질이 수출하는 효자상품은 철광석, 석유, 곡물과 같은 천연자원이 대부분이다. 브라질과 같은 원자재 수출국의 가장 큰 약점은, 경제가 원자재 가격변동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룰라 집권 시기 경제개혁으로 기업이 늘어나고 투자가 활성화되었지만, 이는 원자재 산업에 집중되었다. 당시에는 원자재 가격이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경기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11년 후반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고, 원자재 가격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 세계 철광석의 50%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이 자국 금융위기로 수입 물량을 대폭 줄인 것이 타격이 컸다. 헤알화의 화폐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브라질의 물가는 다시 상승했다. 브라질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경제성장률의 둔화는 실업률 증가로 이어졌다. 2016년 현재에도 브라질에서는 하루 평균 282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쉽다. 갑작스런 경기 침체로 브라질 국민들은 슬퍼했고, 이내 분노했으며, 그 화살은 대통령에게 향했다. 설상가상으로 늘어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호세프는 세금과 수수료를 인상했고, 이는 타오르는 불에 끓는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 되었다. 호세프에 대한 민심이 떨어져나가는 상황에서 그녀와 관련한 정치스캔들이 터졌다. 브라질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가 브라질산 장비와 자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이를 정재계 인사들에게 비밀리에 전달했다는 대규모 비리 사건이 드러났다. 여기에 호세프와 룰라가 연루되었다는 증거와 함께 그녀가 대선 전 국영은행들의 자금을 불법으로 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호세프 탄핵안이 통과되기까지 이르렀다. 이에 호세프와 룰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탄핵안을 가결한 야당 의원들의 더 심각한 부정부패 증거를 내세우며 반발한다. 최종 탄핵안은 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을 비롯한 반-호세프 세력은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를, 여당을 비롯한 찬-호세프 세력은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도 브라질 거리에는 노란색의 우파진영, 붉은 색의 좌파진영으로 나뉘어 알록달록한 시위물결이 한창이었다. 정치다툼에 여념이 없는 브라질 국민은 한낱 운동경기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는 듯하다. 브라질 여론조사업체 다탸폴라(Datafolha)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올림픽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을, 정작 브라질 국민은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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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프 탄핵 찬성 시위(좌)와 반대 시위(우) (출처 : AP통신, 연합뉴스)

남미 최초로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의 브라질은 기세등등하게 잘 닦인 길을 달려가던 중이었지만, 지금의 브라질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만 잔뜩 쌓아둔 채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원자재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하고, 치솟는 물가도 잠재워야 하며, 만연한 부정부패도 척결해야 한다. 엄청난 과제로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데, 이러한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국민이 양분되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은, 상황을 더욱 암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무지 답이 보이질 않는 브라질에도 자세히 보면 몇 줄기 희망이 있다. 우선, 무역흑자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있다. 화폐가치가 떨어진 헤알화로 인해 오히려 수출경쟁력은 조금이나마 확보한 것이다. 2016년 상반기의 무역수지는 2012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헤알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대가 브라질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다음으로, 탄탄한 내수시장이다. 2억이 넘는 인구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여 브라질의 내수 비중은 상당한 편이다. GDP대비 내수 비중이 80.5%에 달해 미국(86.4%), 일본(74.5%)과 같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탄탄한 내수로 인해 세계적 경기침체와 같은 대외 충격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융통성과 주체성을 두루 갖춘 역량이다. 서구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자국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여 동시에 시행한 국가는,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거의 유일하다. 외국의 사례를 끊임없이 조사한 후 필요하다면 차용하고, 브라질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연구에도 소홀하지 않는다면, 이전의 위기를 극복했듯 이번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올림픽을 무사히 마친 정열의 나라의 행보가 기대된다.

 


1 2003년 골드만삭스 보고서에서 2000년대를 전후해 경제가 급격히 성장한 Brazil, Russia, India, China를 일컫는 용어 BRICs가 처음 사용되었고, 이후 2010년 Republic of South Africa가 추가되면서 BRICS로 정립되었다.
2 개혁 이전 1989-1990년 중남미 평균 물가상승률은 940%였으나, 개혁 이후 1993-1994년에는 129%로 대폭 감소하였다.
3 세바스티안 에드워즈, 이은진 역, <포퓰리즘의 거짓 약속>(서울 : 살림, 2012), 331쪽.
4 포르투갈어로 볼사(bolsa)는 지갑 또는 현금을, 파밀리아(familia)는 가족을 의미한다.
5 2013년 세계은행은 10년만에 브라질 극빈층 비율이 9.7%에서 4.3%로 감소된 결과의 핵심 요인을 볼사 파밀리아로 꼽았다.


백지영 (연세대 사학)
jyb4829@gmail.com

사드, 과연 중국을 겨냥하는 칼끝인가?

안보 트릴레마와 사드

트릴레마(Trillema)란 두 국가 사이의 군비 경쟁이 제 3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7월 8일, 점증하는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카드로 한반도 사드(THAAD) 배치라는 옵션을 선택했다. 그런데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이 발표된 이후 가장 강력한 반감을 드러낸 국가는 다름아닌 중국이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한반도 사드 배치가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미국이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다른 나라의 정당한 안보 이익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다. 이렇듯, 최소한 명목상의 이유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과 한국을 방어할 목적으로 사드 체계를 배치하는 행위가 제 3국인 중국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 논쟁은 전형적인 안보 트릴레마의 사례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사드 레이더 논란과 중국의 반발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이토록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핵심적인 원인은 사드 체계의 ‘눈’에 해당하는 AN/TPY-2 레이더의 탐지 거리에 있다. X밴드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AN/TPY-2 레이더는 매우 유연하고 강력한 탐지 능력을 자랑하는데, 중국은 바로 이 레이더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을 감시권 안에 포함하기에 자신들의 안보 이익에 위해를 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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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AN/TPY-2 레이더는 두 가지 모드로 활용이 가능하다. 우선 종말요격모드(TM)의 경우 사드 미사일 포대의 전술작전센터(TOC)와 연동되어 사격통제 기능을 수행하며, 탐지거리는 600k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전진배치모드(FBM)는 사드 미사일 포대와는 독립되어 배치되어 MD의 지휘통제체제인 C2BMC에 수집된 데이터를 전달하는데, 미 의회 예산국(CBO)의 정책보고서 “Options for Deploying Missile Defenses in Europe”이나, 미 육군의 “AN/TPY-2 Forward Based Mode(FBM) Operations” 운용 교범에는 이 모드의 탐지 거리가 1000km정도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피탐체의 레이더 반사 면적(RCS)에 따라 달라지는데, 앞서 언급한 자료들은 AN/TPY-2 레이더가 어느 정도의 RCS 값을 가진 물체를 상대로 1000km의 탐지 거리를 갖는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하고있지 않다.

제작사인 레이시온(Raytheon)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 레이더는 FBM으로 운용될 경우 레이더 반사 면적(RCS) 0.01 m2의 물체를 기준으로 600~700km 의 탐지 거리를 갖는다. 물론 피탐체의 RCS 값이 크면 클수록 탐지 거리는 보다 길어진다. 예를 들어 종말 단계(Terminal Phase)에서 탄도미사일의 추진체로부터 분리된 탄두의 전면 부분의 RCS는 0.014 m2 정도인 반면, 상승 단계에 있는-아직 추진체가 분리되지 않은-탄도미사일의 측면 혹은 후면의 RCS는 이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레이더 방정식에 의하면 RCS가 100배 차이 나면 탐지거리는 약 3.16배, RCS가 20배 차이 나면 탐지거리는 약 2.1배가 차이나는 만큼 표적의 RCS는 레이더 탐지거리 및 탐지확률을 결정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1  중국의 동북부에 배치된 ICBM이 미국 본토를 향해 향해 발사될 경우, 한반도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가 바라보는 이 미사일의 측후면 RCS 값의 평균치가 대략 0.1~1 m2 사이에서 형성된다. 사드 레이더가 FBM으로 운용된다는 가정 하에, 앞서 언급된 계산법에 의하면 이 미사일들은 레이더의 배치 지점으로부터 약 1000~2000km 정도의 거리에서 탐지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이유로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해왔다.

 

과연 사드는 정말 중국의 안보에 위협적일까?

반면 미국과 한국 정부는 사드 레이더가 TM으로 운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의 안보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론상으로는 초기에 TM으로 세팅된 레이더를 8시간에 걸쳐 FBM으로 변환해 운용할 수는 있지만, 이럴 경우 한반도 사드 배치의 목적인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은 상실되기 때문이다. 사드 미사일 포대의 전술작전센터(TOC)와 연동된 사격통제 기능은 이 레이더를 TM으로 운용할 경우에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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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주한미군이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방어능력을 상실해가면서까지 사드 레이더를 본래 배치 목적에 어긋난 FBM으로 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미국은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를 FBM으로 운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중국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조기경보능력을 제공하는 다양한 센서들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에 배치된 2기의 AN/TPY-2 FBM 레이더, 서태평양 전구의 해상 배치 X-밴드 레이더, 대만에 배치된 PAVE-PAW OTH(Over-the-Horizen) 레이더, 태평양 함대 소속의 이지스 구축함, 우주에 배치된 DSP/SBIRS/STSS 정찰위성들이 바로 그런 센서들에 해당한다.

특히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미국의 본토 방어 전략에서는 우주 기반 자산들과 알래스카에 배치될 신형 장거리 레이더가 핵심 센서로 기능한다. ICBM의 초기 상승 단계(Boost Phase)에서 DST 위성이나 SBIRS 위성이 열과 가스 변화를 감지해 조기 경보 기능을 수행하고, STSS 위성과 알래스카의 장거리 레이더가 중간 단계(Midcourse Phase)에서 종말 단계(Terminal Phase)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미사일의 궤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감시/정찰 자산들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GBI(Ground Base Interceptor)가 ICBM의 요격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탄도미사일의 기만탄 분리 작업이나 다탄두(MRV) 분리 작업은 중간 단계 이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국 동북부에서 상승 단계에 있는 탄도미사일에 대한 제한된 정보만을 전달 가능한 AN/TPY-2 레이더의 대(對) 중국 효용 가치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사드 () 안보 트릴레마의 본질

그런데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합리성이나 중국 지도부가 생각하는 합리성은 다를 수도 있다는게 바로 이 안보 트릴레마의 본질이다. 기본적으로 안보 딜레마 혹은 트릴레마는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국제 정치에서는 한 국가가 순수하게 방어적인 의도로 배치한 무기체계가 상대국, 혹은 제 3국에게는 공격적인 의도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

아마 중국의 표면적인 반응의 이면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첫째, 중국 지도부는 실제로 한반도에 배치될 사드 레이더가 TM이 아닌 FBM으로 운용될 것이라 믿고 있을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의도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신뢰 부족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오인식(Misperception)을 유발하는 시나리오이다. 둘째, 실제로 그렇게 믿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사드 체계 배치를 통해 잠정적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관계가 강화될 가능성을 우려해 일종의 “떼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 지도부는 자신들의 A2/AD(Anti Access/Area Denial) 전략과 미국의 Pivot to Asia 전략이 충돌하는 서태평양-동아시아 지역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가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삼각 동맹의 형성을 가속화되는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할 수 있다. 어쨌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한반도 사드 배치가 대북 견제 수단이라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첨언하자면, 중국 정부는 예전부터 미군의 자산이 한국에 배치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일례로 한-중 수교 2년 후인 1994년, 당시 대한민국이 패트리어트(Patriot) 체계를 배치하려 했을 때도 “중국은 군사훈련이나 미사일 배치 등 한반도의 평화유지와 긴장완화에 해로운 어떠한 행동이나 조치도 지지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었다. 1991년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 군의 스커드 미사일을 요격함으로써 유명세를 얻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와는 달리 레이더의 범위가 중국 영토를 포함할 우려가 전혀 없는 무기체계였다.

신뢰의 부재는 갈등을 유발한다. 한반도의 사드 기지를 유사시 우선 타격 목표로 삼겠다느니, 한국이 독립을 잃을 수도 있다느니 하는 중국의 노골적인 협박성 언사가 바로 신뢰의 부재가 빚어낸 갈등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어떠한 형태로든 중국과의 관계에서 정치적 비용을 수반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안보를 위해 이미 사드 배치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도, 사드 발(發) 안보 트릴레마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중국 정부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아예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중국을 향해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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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대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과연 중국은 한국에게 신뢰할만한 존재인가? 한국이 사드 배치를 하든 하지 않든 중국은 이미 유사시 한국에 대한 공격 계획을 갖고 있다. 수 년 전 동북 3성에 전진 배치된 중화인민해방군 제 2포병 820여단의 DF-15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바로 그 증거이다. DF-15의 사거리는 800km 이하로, 지린성 퉁화에 배치된 이 미사일의 현실적인 타격 목표는 한국 외에는 없다. 한국을 향해 핵탄두까지 탑재 가능한 공격용 무기를 겨냥하고 있는 국가가, 한국이 자국의 안보 수요를 위해 방어용 무기를 배치하겠다는 결정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또한 지난 달 인도의 한 언론에서 파키스탄과 중국 정부가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를 들여오는 과정에 동조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의도적으로 묵인한다는 의심이 들지는 않는가? 더불어 북한이 공개한 신형 방사포와 신형 방공미사일의 형태가 중국이 운용하는 동급 무기체계와 매우 유사해 보이는 것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인가? 이 모든 의문점들을 한 가지 질문으로 좁혀 보자면, 지금까지의 선례에 비추어 봤을 때 중국 지도부에게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줄 의지가 존재하긴 하는가?

아마 그렇지 않다면, 한반도 사드 배치는 비록 최선의 선택지는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현실적으로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몇 안되는 카드들 중 하나가 아닐까?

사드는 동급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러시아의 S-400, 중국의 HQ-19, 이스라엘의 Arrow-3와 비교했을 때 가장 신뢰성 있고 검증된 무기체계이다. 사드 체계가 경상북도에 배치된다면, 유사시 미군의 증원과 한국의 지속적인 전쟁수행능력 확보에 필수적인 남부권의 공항과 항만 및 병참 시설을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일각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의 공중회전(Tumbling) 현상이나 가짜 탄두의 사용 때문에 사드로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성걸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원은 지난해와 올해 발사된 북한 미사일 가운데 공중회전을 보인 미사일은 없었으며, 가짜 탄두의 역할을 하는 추진체의 잔해는 실제 탄두와 상당한 정도로 거리를 두고 비행하기에 레이더 식별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반론을 일축하였다. 즉, 미국이 제시한 사드 배치 카드가 한국에 제공하는 군사적 효용은 가시적이다.

반면 중국이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결합된 최악의 시나리오로부터 느끼는 안보 위협을 상쇄하기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더 나아가 한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중국이 의도적으로 북한의 행위를 묵인하고 심지어 후원한다는 의심할 만한 정황까지 존재한다.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위협의 증대는 한국의 사활적 안보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일정부분 침해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을 겨눈 북한의 칼끝은 한국의 사활적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현존하고 명백한 위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이 사드 배치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 한국은 한-미 동맹의 방어능력 강화라는 옵션을 택할 수밖에 없다.


박태용∙임재성, 레이더 위치에 따른 탄도미사일의 RCS 특성, The Journal of Korean Institute of Communications and Information Sciences 15-01 Vol. 40 No.01 p. 215


 

두 얼굴의 정치인, 아베 신조(安倍 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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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아베 신조(출처: 연합뉴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야누스(Janus)’란 이름의 신이 등장한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신으로 성과 집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처음과 끝, 전쟁과 평화를 상징한다. 그로부터 나온 말이 바로 ‘야누스의 얼굴’. 이는 두 얼굴을 지닌 신의 모습에 빗대어 이중적인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일본의 한 정치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일본의 총리다. 그는 1993년 ‘보수 왕국’이라 불리는 야마구치 현에서 중의원에 당선되어 그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의 선거구를 계승하며 정계에 첫 발을 디뎠고, 2006년에는 최연소 전후(戰後) 세대 첫 총리라는 화려한 타이틀로 총리직에 올랐다. 그는 전후 일본 정치사를 통틀어 두 번 총리직에 오른 두 번째 인물이다. 일본 최고의 정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소통 능력과 외교 실력, 과감한 인재 중용으로 노련하게 일본 정국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극우적 망발과 수정주의적 역사관 표출로 인해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한 관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은 지난 달 27일 G7 정상회의 개최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다가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게다가 민생 현안과 직결되는 최대 현안인 소비세율 인상 방침을 2019년 10월로 연기함으로써 그의 지지율은 지난 달보다 7% 상승한 55.3%를 기록했다.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한국의 현명한 대일 정책 구상을 위해서는 지피지기가 절실히 요구된다. 아베는 누구인가? 그의 극우주의적 역사관을 구성하는 뿌리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종착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오늘날의 아베를 가능케 한 세 가지 형성 요인을 파헤쳐 본다.

 

아베의 사상적 배경: 요시다 쇼인과 야마구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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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조슈(야마구치현) 출신의 메이지유신 주역들을 다수 배출한 일본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1830~1859)

우) 요시다 쇼인의 사설학당인 쇼카손주쿠 내부 모습. 메이지 유신과 한일 합병의 주역들이 보인다(출처: 제이누리).

 

아베 신조는 1954년 9월 21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적은 야마구치 현 오쓰 군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의 가족의 정치적 텃밭이 되어 준 ‘보수 왕국’의 중심지이다. 야마구치 현은 또한 일본 근대사 태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근대화의 성공 원동력인 메이지 유신(1868년)이 바로 이 곳, 야마구치 현의 하기시 조슈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곳은 동시에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의 출발점이자 수많은 과격파 사무라이들의 본거지였으며, 정한론을 기반으로 한 한일 병합 야욕이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얼룩진 기괴한 역사가 서린 바로 이 곳에,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된 요시다 쇼인이 있었다.

쇼인은 하기의 하급 사무라이 출신으로, 28살의 어린 나이에 사설 학당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열고 제자를 양성했다. 그는 당대 엄격한 계급 사회에서 출신을 따지지 않고 문하생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존 질서를 파격적으로 배격했고 국민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이는 곧 문하생들의 신분 상승 의지로 이어졌으며, 권력을 향한 야욕과 탐욕을 키우는 데도 한 몫을 했다. 그는 ‘일군만민론(나라는 군-천황-이 지배하며 백성은 군 아래서 평등하다)’을 내세워 막부 타도를 외쳤으며 훗날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주의의 기틀을 다진 <유수록>을 썼다.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즉시 홋카이도를 개척해 제후를 봉건하여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오키나와와 조선을 정벌해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과 필리핀 루손 일대의 섬들을 노획해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선과 만주, 그리고 중국의 영토를 점령하여 강국(유럽)과의 교역에서 잃은 것은 약자에 대한 착취로 메우는 것이 상책이다

<유수록>의 내용 중 일부

당시 이 책을 접한 많은 일본인들은 책에 담긴 국가전략에 열광했고, 이는 곧 군국주의 침략의 토대가 된 대동아공영론과 정한론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요시다 쇼인의 제자는 누구였는가? 그의 사설 학당인 쇼카손주쿠 안 강의실에는 그의 밑에서 국가 전략을 공부한 12인의 문하생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세 인물은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야마가타 아리모토다. 이 중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조선 통감으로, 을사늑약 체결의 장본인이다. 야마가타 아리모토는 조슈 군벌의 총수로, ‘일본 군국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그는 조선 침략의 발판이 되는 군사력과 인력을 가동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쇼인의 직계 제자뿐 아니라 그 뒤를 이은 추종자들인데, 이들은 상당수가 조선 침략의 원흉을 제공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악질 중 악질’들이란 것이다. 예컨대 이노우에 가오루(한일수호조약 체결, 을미사변 직전 조선공사), 가쓰라 다로(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을사늑약·한일병합 당시 총리), 데라우치 마사다케(초대 조선총독), 미우라 고로(을미사변 당시 조선공사, 명성황후 시해 지휘) 등이 있다. 이들은 조슈 출신의 ‘번벌’을 조직적으로 형성하여 한반도를 식민지화하여 쇼인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 한일병합 과정에 관여한 10여명 정도의 핵심 세력들 모두가 야마구치 현 출신이라는 사실 또한 이를 뒷받침해준다.

요시다 쇼인의 섬뜩할 정도로 과격한 대국을 향한 야심, 그리고 그런 그의 가르침을 평생 따랐던 추종자들은 일본 내 정계에서 그 맥을 계속 이었고, 그 연장선의 말미에는 바로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가 자리잡고 있다. 아베는 1기 내각 시절, 2006년 의회 발언에서 “쇼인 선생은 3년간(감옥 강의 포함) 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작은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 태동지가 됐다”고 했다. 조선 정벌의 야욕을 담은 쇼인의 책 <유혼록>과, 후루카와 카오루의 저서 <유혼록의 세계>는 아베가 직접 밝힌 그의 애독서이다. 그는 심지어 2013년 8월 ‘쇼인 신사’를 찾아가 참배하면서 “중의원 입후보의 뜻을 굳혔을 때도 참배했다, (앞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그의 ‘올바른 판단’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무도 그 속 뜻을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겠지만, 다만 그의 쇼인에 대한 참배와 그 앞에서의 굳은 다짐의 행동을 미루어 보아 그의 과거 화려했던 제국주의 일본을 향한 열망과 야욕을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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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 묘(왼쪽), 2013년 8월 아베 신조가 요시다 쇼인 신사를 방문 참배하고 있다(출처: 조선일보 DB).

 

아베의 롤모델, 기시 노부스케

아베의 사상적 롤모델이 요시다 쇼인이었다면, 그의 정치 생활에 있어서의 롤모델은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이다. 그는 반전 평화주의 노선을 지향하던 그의 아버지(아베 간, 전 중의원 의원)를 외면하고 외가의 계보를 따랐는데, 그 스스로 “나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지만 기시 노부스케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기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다. 특히 그는 부국강병 일본을 만들기 위한 강한 민족주의적 열망을 그의 외조부로부터 이어 받았다. 2012년 총선거 당시 자민당이 294석을 확보하는 큰 승리를 거두며 정권을 탈환한 후 그 즉시 기시의 묘소를 참배하며 “진정한 독립”을 외쳤던 선대의 사명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기시 노부스케는 어떠한 인물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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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베 신조 가계도. 우) 기시 노부스케(1896~1987) (출처: 헤럴드코리아)

기시는 ‘쇼와의 요괴’라 불릴 만큼 1945년 이전에는 명석한 경제관료로서 일본의 산업정책을 주도하고 만주국을 경략한 장본인이었고, 패전과 동시에 A급 전범으로 수인의 신세였으나 냉전의 수혜로 복권되어 불사조처럼 총리직에 올라 고도성장으로 일본의 부흥을 이끈 정치가였다. 그는 만주국에서 전략적 계획경제로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하여 국방력을 확충하고 다시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이른바 부국강병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패전 후에는 평화헌법과 냉전의 압력이란 한계 속에서 미국에 안보를 위임하고 경제성장에 진력하는 국가전력을 펼쳤다. 그가 그리는 국가 전략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일본의 진정한 독립, 즉 평화헌법의 개헌을 통한 자위대의 정식 군대 명문화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보통국가화였다. 그는 표면적인 이유로는 증대하는 동북아 지역의 안보 위험을 근거로 하여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공고히 하고 동맹국을 위해 자유로운 무력 행사가 가능하도록 헌법 제9조를 개정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속내는 일본의 진정한 독립 달성이었으며, 그가 펼친 미일동맹 강화와 경제 성장 정책들은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간단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가 그렸던 개헌을 통한 일본의 자주독립 야심은 그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로부터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그는 그의 외조부가 선행했던 것처럼 헌법 제9조의 개헌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들의 지지율을 높이고자 경제 성장에 우선 집중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여 자위대의 정식 군대 복귀를 위한 명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기 부양책을 통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율이 확보되고 미국과의 군사 동맹 강화로 인한 주변 국가들의 반발이 수그러지면 개헌을 추진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 1993년 정계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현재까지 ‘헌법 개정은 나의 정치 목표’라는 일관된 의지를 강력히 표명해왔다. 2006년 1차 집권 당시 본격적인 개헌 추진을 가속화하다 퇴진한데 이어, 2012년 재집권 이후에도 ‘개헌은 나의 사명’이라며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생전 과업이자, 끝끝내 이루지 못한 숙원이 평화헌법의 개헌이라는 점에서, 아베에게 개헌은 유훈에 가깝다.

 

일본 정치의 보수화와 우익 연맹의 형성

아베의 우익적 사상에 기반한 정치를 가능케 한 다른 환경적 요인은 갈수록 보수화하는 일본 내 정치 세력의 모습이다. 현 일본 정계는 보수와 혁신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희석되고, 보수와 보수 내지는 보수와 우익의 대결로 집약되는 정치적 경쟁으로 대변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일본의 정치 변화의 거시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 정치가 보수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정당 체계는 1955년 이후 약 네 차례에 걸친 변화가 있었는데, 첫 번째 정계 개편은 1955년에 이루어진 보수 정당 자민당과 일본사회당으로 구성된 양대 정당 체제의 구축이었다. 그 후 1960년 미·일 안보협정의 재체결을 놓고 벌어진 안보 투쟁의 여파로 인한 보·혁 대결구도가 지속되었으나, 혁신 및 중도 세력이 내부 분열로 몰락하면서 90년대에 보수적 색채가 뚜렷한 정치적 체계가 새롭게 성립되었으며 그 후 2012년 총선을 기점으로 일본 정계의 보수화는 그 색이 더욱 짙어졌다. 2012년 총선에서 자민당은 294석을 얻으며 정권 재탈환의 쾌거를 이룩해낸 반면 중도 보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57석을, 혁신 정당인 사회당은 중의원 2석을 차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2012년 총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당시 총선에 나선 12개 정당 가운데 자민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야당 대표가 전 자민당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야당 대표들마저 자민당 의원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일본 정당의 광범위한 보수화의 진행을 반증해주며, 이를 기점으로 자민당은 현재까지도 보수 및 우익 세력을 위시한 여당으로 그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당 간 경쟁 체제에서의 보수 정당의 약진, 주요 정당 내 보수 세력의 강화와 더불어 일본 정치 세력의 보수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요인은 보수 우파 국회의원 연맹의 활성화이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는 가운데 일본 정계 내에서는 초당적 성격을 가진 다양한 국회의원 모임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 중 대표적인 모임이 ‘모두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국회의원의 모임(1997)’과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1997)’이며, 아베는 이 두 대표적인 모임 모두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은 아베가 사무국장을 맡아 종군 위안부와 난징 대학살 등에 대해 기술한 교과서의 재검토를 강력하게 주장한 대표적인 우익 역사 교과서 의원 연맹으로, 이는 아베 2차 내각 출범 이후인 2014년 1월에 새롭게 개정된 고교 교과서 기준에 따라 편찬된 우익 성향의 교과서 보급 사건과 맥을 같이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아베의 사상적 배경이 되어 준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정치적 롤모델인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우익적 성향의 정치관을 표출 가능케 했던 일본 내 정계의 보수화 등의 요인들은 현 아베의 평온한 얼굴 뒤 숨겨진 야욕의 얼굴을 짐작케 해준다. 그의 얼굴에서는 과거 정한론을 주창하며 일본을 강성 대국화하고자 했던 요시다 쇼인의 야심이 보이며, 동시에 평화 헌법 개헌을 통한 자주 국방과 일본의 독립을 추구하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야망이 보인다. 비록 빠른 시일 내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는 없겠지만 그의 강성대국 일본을 향한 강한 열망과, 그 신념을 대변하는 자민당의 다수 우익 세력의 행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아베의 장기 집권이 2018년까지로 확실시 된 지금, 대한민국의 대일 정책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피지기의 정신이 절실하다.

 

THAAD, 그리고 한반도

2016년 2월 7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확보를 위한 장거리 로켓 발사체 실험을 감행한 직후, 주한미군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위한 협의를 공식적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한·미 양국의 정부 인사들이나 학계 인사들의 개인적인 수준에서 제기되어왔던 THAAD 한반도 배치설이, 드디어 양국 정부의 공식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국내 여론은 물론 동북아 차원에서 한반도 THAAD 배치에 관한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특히 중국이 THAAD 체계의 배치가 자국의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내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무기체계 중 하나에 불과한 THAAD가 이렇게 큰 논란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THAAD의 배치가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내포함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과연 아직 현재진행형인 THAAD 배치 이슈를 어떻게 읽어내야 할 것인가?

1. THAAD란?

THAAD는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의 약자로, 통상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란 명칭으로 해석된다. 제작사는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이며, 모든 미사일방어체계와 마찬가지로 표적 탐지/추적용 레이더와 이에 연동된 요격미사일 포대로 구성되어 있다. THAAD의 이름 중 “Terminal”과 “High Altitude Area”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THAAD는 다층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MD(Missile Defense)에서 일부 구간을 담당하는 방어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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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MD 시스템

미국의 MD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다양한 감시/정찰 자산을 통해 적국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포착한 후, 탄도미사일이 상승 단계(Boost/Ascent)에서 대기권을 돌파하면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에서 발사된 SM-3 미사일이 최초 요격에 나선다. 그 다음 중간 단계(Midcourse)에서는 SM-3 미사일과 더불어 GBI(Ground Based Intercepter) 미사일이 요격을 담당하며, 미사일이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하며 낙하하는 종말 단계(Terminal) 구간은 지상의 THAAD 그리고 PAC-3가 담당한다. 종말 단계에서도 저고도에서 최종 요격을 담당하는 PAC-3와 달리, THAAD는 “High Altitude Area” 즉 고고도에서의 요격을 책임진다.
THAAD 요격 미사일의 요격 반경은 200km, 비행속도는 음속의 8.24배이며, 요격 고도는 40~150km로 사실상 중~고고도까지의 구간을 커버한다. 통상 미사일 방어 체계에서 고고도 요격미사일은 100km 이상의 외기권에서만 요격 기능이 작동하는데, THAAD는 100km 이하의 대기권과 100km 이상의 외기권에서 모두 활용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특이한 기능은 THAAD의 가격이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2. 한반도 THAAD 배치 논란의 발단과 전개

김지훈

김관진 全 국방부 장관(왼쪽)과 왕이 외교부장(오른쪽)

한반도 THAAD 배치 논란은 2013년 국방부가 고고도 요격을 위해 THAAD 도입을 고려한다는 한 국내 언론보도를 계기로 최초로 시작되었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THAAD를 포함한 MD 구성요소에 대해서는 전혀 도입할 계획이 없으며,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는 독자적인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THAAD가 주한미군에 의해 배치 및 운용될 가능성은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을 포함한 미국 측 당국자들이 끊임없이 한국에 THAAD 배치를 설득하는 한편, 한국 정부는 이를 완고하게 거절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 북한이 2016년 1월의 제 4차 핵실험, 2월의 ICBM 발사 실험을 감행한 이후 한국 정부는 기존의 입장으로부터 선회하여 미국과 THAAD 배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식적인 협의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해당 협의에 대해 중국 정부가 강력히 반발함으로서 THAAD 한반도 배치 논란은 절정에 이르렀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劍 意在沛公)의 고사를 인용하며, 항장(미국)이 칼춤을 추는(THAAD 배치) 의도는 유방(중국)을 죽이려는데 있다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출한 것이다. 이외에도 중국의 당국자들 및 관영언론은 “한-중 관계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거나 “중국 폭격기가 1시간이면 한국의 사드 기지를 파괴 가능.” 등 외교적 결례에 해당하는 표현까지 사용해가며 한반도 THAAD 배치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이와 함께 2013년 이후 꾸준히 전개되어온 국내 반대여론 역시 절정에 이르렀다. 주로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나 참여연대 등 주로 진보적 성향의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반도 THAAD 배치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반대 여론이 결집되었고, SNS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유포됨에 따라 THAAD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다.

3. THAAD에 관한 몇 가지 오해와 사실

일부 국내 언론보도를 통해 오도된 THAAD에 관한 사실들은, THAAD 배치 논쟁을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질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한반도 THAAD 배치의 함의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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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 THAAD

첫 번째로 THAAD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해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는 방어체계라는 의문이 많이 제기되었다. 북한이 보유한 다양한 유형의 탄도미사일 중 한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수단은 KN-02 ‘독사’ 단거리 미사일(사거리 150~160km), Scud 계열의 단거리 미사일(사거리 300~700km), 그리고 고각 발사된 노동 계열의 준-중거리 미사일이다. 이들 중 KN-02는 최대 도달 고도가 40km 이하이기 때문에 THAAD로 방어가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의 중부~남부 지역의 군사거점 내지는 산업기반시설을 타격 목표로 상정하는 Scud나 노동 미사일을 상대로 THAAD는 높은 효용을 제공한다. 계룡대를 공격하는 북한 탄도미사일을 목표로 상정하여 실시된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따르면 THAAD 1개 포대가 평택에 배치될 경우 65초, 대구에 배치될 경우 23초의 요격가능시간이 확보된다.¹ 17차례에 걸친 THAAD 요격 실험 중, 11번의 실험이 북한이 보유한 Scud 미사일과 유사한 형태의 단거리 타겟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THAAD가 요격하지 못하는 구간은 현재 국내 개발 중인 M-SAM PIP나 주한미군에서 이미 운용중인 PAC-3와 같은 중-저고도 방어체계가 담당하게 된다. THAAD는 미사일 방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시스템의 일부에 불과하며, 대공방어의 기본 원칙은 다양한 방어 체계 간의 ‘상호중첩’이다. 비록 THAAD의 성능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를 다른 방어 체계와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함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두 번째 오해는 THAAD의 레이더가 직접적으로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THAAD 레이더는 중국에게 심각하게 위협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THAAD의 구성요소인 AN/TPY-2 레이더에는 두 가지 운용 모드가 존재한다. 하나는 탐지거리가 1800km인 전진배치 모드(FBX)로, 이 모드는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적성국에 의해 발사된 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다른 하나는 THAAD 요격 미사일 포대와 연동되는 종말요격 모드(TBX)인데, 해당 모드로 설치될 경우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600km이다. 주한미군에 배치될 TBX 모드의 레이더는 탐지 가능 거리 안에 중국 본토를 거의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군이 언제라도 종말요격 모드를 전진배치 모드로 전환할 수 있으며, 이 경우 1800km에 달하는 FBX 모드의 레이더가 중국 내륙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곤 한다. 그런데 이 반론 역시 AN/TPY-2 레이더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생하는 오류이다. 우선 전파 특성상 FBX 모드의 레이더를 통해 중국 종심지역(군의 후방제대, 지휘통제 및 지원시설 등이 위치한 지역)의 일반적인 군사 활동을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THAAD 체계 레이더는 탐지거리 1000km에서 지구곡률로 인해 고도 60km 이상의 물체를 탐지할 수 있는데 고도 40km 이상은 공기가 거의 없어 엔진을 탑재한 물체는 비행할 수 없는 고도이다.² 더불어 헤리티지 재단의 동북아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에 의하면, 북한을 향해 설치된 THAAD 레이더는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 배치된 탄도미사일에 대한 제한적인 조기경보 능력만을 갖는다. 즉 레이더의 사각에 위치한 덩샤허나 라이우 등 중국 내륙 지방에서 미국을 향해 발사되는 ICBM의 궤도를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세 번째로는 THAAD 배치 시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유지비용이 소요된다는 의문이 제기되곤 하는데, 이는 아마 일부 국내 언론들이 THAAD 체계의 구매비용을 유지비용으로 착각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2010년 미 국방성 산하의 Missile Defense Agency가 미 의회 예산처에 제출한 자료를 참고하면, 사드 1개 포대와 1기의 AN/TPY-2 레이더를 운용하는데 소요되는 연간 비용은 2.5~2.7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더군다나 만약 THAAD가 주한미군에 배치되더라도,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에 근거하여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 미국이 부담하며 한국은 부지와 기반시설만을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다만 추후에 방위부담금 형태로 한국 측에서도 유지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할 가능성은 제기되는 상황이다.

4. 한반도 THAAD 배치의 함의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장군이 본국에 THAAD 배치를 요청한 시점부터 THAAD 배치 협의의 본질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주한미군 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을 미국이 배치’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로부터 한-미 연합군의 억제/방어능력 증진이라는 군사적 편익을 얻는 포지션이었다. 최소한 한-미 양국이 지금까지 밝혀온 공식적인 입장은 그렇다.
이에 대해 2013년부터 국방부의 일관된 공식적 입장은 THAAD를 비롯한 MD 구성요소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해 미국과 사드 배치 협의를 시작한 원인은, 북한의 제 4차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 전승절 퍼레이드에 참석하고 AIIB에 가입하는 등 이전 정부와 비교했을 때 이례적인 친중 행보를 보여 왔으나, 정작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북한은 중국의 안보상 이익을 고려할 때 포기하기 힘든 카드임이 밝혀졌다.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끊임없이 보여주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호전적인 행보는 미국의 이목을 동북아시아 지역에 집중시키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이 시도하는 역내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한국은 미국과 연계해 ‘THAAD 배치 협의’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한반도 THAAD 배치는 미국 MD 전략의 네트워크가 중국과 보다 밀접한 지역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중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물론 THAAD가 그 자체로 중국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굳이 한반도에 THAAD 레이더를 배치하지 않더라도 이미 중국의 군사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 미국 MD체계의 핵심 감시수단은 적외선 센서 조기경보위성 DSP(Defense Support Program)이다.³ 이외에도 KH(Key Hole) 시리즈 첩보 위성⁴과 대만에 배치된 PAVE PAWS 지상 배치 조기경보레이더, 태평양 함대에 소속된 다수의 이지스 구축함 등 여러 가지 감시/정찰 수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한반도 THAAD 배치는 MD 네트워크의 확장이란 측면에서도 군사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추동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MD가 갖는 정치적 의미에 있다. 미국은 THAAD 배치 논란이 점화되던 시점보다도 한참 전인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게 MD 참여를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한국의 그 어떤 정권에서도 이념적 성향을 막론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MD의 구성요소인 THAAD의 도입을 거부해왔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장 및 미사일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증대되는 한편, 중국의 북핵문제 해결 대한 태도는 여전히 소극적으로 유지되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안전보장을 위한 옵션으로 한·미 동맹의 안보 공약 강화를 선택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의 한 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히 중국에게 불편한 상황을 제공할 수 있다. 즉 THAAD는 그 자체로 중국에 심각한 위협은 아니더라도, 한국이 미국의 지속적인 THAAD 배치 및 MD 참여 요구를 거절해오던 기존의 입장으로부터 선회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전까지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벗어나는 북한의 행위에 대해 다소 관대한 입장을 유지하더라도 중국의 안보적 이익에 손실이 야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책으로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할지도 모르는 사안에 대한 협의를 시작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한반도 THAAD 배치 사안에 대해 겉으로는 한국을 향해 외교적 결례에 해당하는 언사를 내뱉으면서도, 이면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6년 2월 25일 미국과 중국은 UN 안보리 대북 제제 결의안 초안에 전격적으로 합의했으며, 3월 2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자금을 차단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안보 해결 과제는 북핵 문제의 해결, 혹은 최소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억제/방어능력의 확보이다. 미국과 연계한 THAAD 배치 협의 카드는 이 원칙에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 번째, 북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거시적 목표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에게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중국의 관대한 태도가 중국의 국가 이익에 손실을 유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번째, 중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하든 하지 않든 THAAD 배치 협의가 한국에 제공하는 편익은 유효하다. 주한미군 THAAD 배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연합군의 억제/방어 능력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이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움직임에 협조하는 노선을 선택한 상황에서, 굳이 한·미 양국이 THAAD 배치를 강행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MD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THAAD의 한반도 배치는, 북한을 공동위협으로 상정하는 한·미 동맹이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상정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야기한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함으로서 위험요소를 최대한으로 줄이는 헤징(Hedging) 전략을 추구해왔다. THAAD 배치는 이러한 기존의 전략으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하며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정치적 비용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표면적으로 협력 노선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면, THAAD 배치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억제능력을 제고하는 옵션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어떤 옵션을 선택할 경우라도 각각 다른 형태의 위험 부담이 따르기에, THAAD 배치가 수반하는 정치적 비용과 군사적 편익에 대한 냉철한 계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¹ 장영근, 「사드미사일 체계의 한반도 시뮬레이션」, 국가안보전략 통권 37 Vol 04(2015), P. 22
²신영순, 「THAAD 문제로 본 자주국방의 허상」, 국가안보전략 통권 44 Vol 05(2016), P. 29
³정지궤도에서 적외선 센서를 탑재해 미사일이 발사된 장소의 수증기와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목표물을 탐지하는 위성이다. 실제 운용 사례로 1998년에 북한이 시험 발사한 대포동 1호 탄도미사일을 포착한 바 있다. 현재는 18~23호기가 운용중이며, 추후 SBIRS(Space Based Infra Red Sensor) 위성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⁴실시간으로 15cm 크기의 물체를 판별할 수 있는 정확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광학 정밀정찰위성으로, 미국의 영상정보(IMINT) 수집을 담당하는 감시청찰 자산 중 하나이다.


 

김지훈 (연세대 정치외교)
peter9245@gmail.com

 

돈줄 쥔 왕서방, 그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1월 23일 시진핑 중국 주석은 테헤란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만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지난 16일에 미국과 EU의 대(對) 이란 제재가 해제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중국의 발 빠른 행보가 눈에 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졌다

양국이 협력을 약속함에 따라 중국은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대하게 되었다. 최근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는 특히 그러한 구도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중동 순방 일정 중에 중국을 “중동 평화의 건설자”라고 칭하며 노골적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할 의도를 드러냈다. 중국이 중동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은 팔레스타인에 약 90억 원 규모의 무상원조를 약속했고 이집트와는 18조 원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패트릭 크로닉 미국 아태 안보프로그램 선임국장은 “중국은 미국의 힘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중동에서 혼란스런 정국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강대국으로 인식되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서구가 이란을 상대로 오랜 시간을 들여 얻어낸 성과를 이용해 왕서방은 자신의 몫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비단 중동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몇몇 전문가들이 중국의 내부문제 등을 근거로 중국 경제 성장의 한계를 이야기해왔지만 현재 상황에서 중국이 세계 각지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초기부터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우방국인 영국까지 포섭하며 성공적으로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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