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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나라의 경제와의 전쟁

Brazil-Economy

 21세기 남미 유일의 성공신화 브라질, 이번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 4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공개할 기회가 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이하 리우) 올림픽이 시작된 것이다. 각국의 스포츠 선수들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리우로 향했고, 전 세계 또한 기다리던 축제에 들뜨고 있다.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인해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위축된 경제로 인한 빈곤의 심화는 조직범죄의 증가로 이어졌고 지카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으며, 환경오염도 많은 전문가들이 걱정할 수준이었다. 이러한 경제, 치안, 보건, 환경에 걸친 방대한 문제를 마땅히 해결해야 할 브라질 정부는, 정치적 위기를 맞아 당쟁을 반복하느라 국정 운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쯤 되면 브라질이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전까진 남미에서 한 번도 올림픽을 연 국가가 없었다는 점이 브라질에게 올림픽 유치권을 넘겨준 가장 큰 이유이지만, 당시 급성장하고 있었던 브라질의 경제 상황도 한 몫을 했다. 올림픽 개최국을 선정할 2009년 당시만 하더라도, 브라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속했고, 그전에 이미 골드만삭스에 의해 신흥경제국으로 꼽힐 만큼1 경제규모가 커진 상황이었다. 그렇게나 촉망받던 브라질은 현재 경제위기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리고 사회 제반 문제에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암담한 남미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성장했고, 잠시 찬란하게 빛나다가 추락해버린 브라질의 다이나믹한 역사는 세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남미의 폐해

“용어나 개념, 기관은 곧잘 개발자나 설립자의 뜻과 상관없이 쓰이기 마련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통찰력 있는 이 명언은, 그의 사후 약 20년 후 생성된 용어, “워싱턴 컨센서스”를 염두에 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러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오용으로 브라질의 초기 경제위기를 설명하려는 학자들이 상당하다. 우선 이 컨센서스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영국 출신 정치경제학자인 존 윌리엄슨은 자신의 저서에서 공산권 붕괴 이후 동구 국가의 경제개혁에 도움이 될 만한 대책을 제시했다. 그 대책이란 국가 기간 산업 민영화,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 재정건전화, 변동환율제 도입, 재산권 보호 등 신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10가지 방법이었다. 당시 윌리엄슨은 워싱턴에 있는 미 정부, 의회, 경제기구 등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릴 만하다며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실제로 미 재무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가 워싱턴에서 이 방법에 대해 합의를 하면서 세 핵심기구의 기조로 정립되었다. 윌리엄슨은 당대 경제학자의 주류의견을 종합하여 정리한 후, “이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제시에 그쳤으나, 워싱턴 트라이앵글은 이것을 중남미에 직접 “처방”을 내리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 재무부장관이었던 니콜라스 브래디는 이른바 브래디 플랜으로 이를 실천에 옮겼다. 라틴아메리카 채무국들에게 채무 일부를 변제해 주고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에,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개혁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특정한 경제정책을 도입해야한다는 세부사항이 없어 조건이 모호하긴 했지만, 중남미 국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기꺼이 수용했고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1990년대 초반에 각국은, 비록 속도는 달랐지만,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수입 관세를 낮게 조정하며 세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었다. 경제가 활성화되니 자연스럽게 임금 수준이 회복되었으며 인플레이션도 잠잠해졌다.2 그러나 기쁨도 잠시, 중남미 국가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수입에만 신경쓰다보니 수출에는 소홀하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국가가 국내 통화가치를 미국 달러화 가치와 동일하게 또는 인위적으로 높게 하여 수입을 용이하게 하는 정책을 폈고, 수출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고정환율제는 단순히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투기 문제도 발생시켰다. 더군다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가 확립되기도 전에 이루어진 민영화는 독점기업만 양산할 뿐이었고, 매각과정에서는 부정부패가 속출했다. 제도보다 앞선 이론의 도입은 재앙을 낳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물가는 또다시 상승했고,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브라질의 상황도 여느 주변 국가와 다르지 않았다. 1989년 당선된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 대통령 역시 물가안정화 정책과 함께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려고 애썼다. 초반에는 물가가 안정되는 듯 했다. 대통령직을 처음 역임한 해인 1990년에는 물가상승률이 약 3,000퍼센트에 달했으나, 이듬해에는 430퍼센트로 낮출 수 있었다.3 그러나 재정건전화에 실패하여 적자는 쌓여만 갔고, 이 때문에 1993년에는 또다시 2,000퍼센트라는 엄청난 수치로 회귀하였다. 콜로르 다음 정권에서 막대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재무부장관 페르난두 엔리크 카르도수는 이 반인플레이션 정책의 핵심 인물이었다. 카르도수는 당시 브라질 화폐인 크루제이루화를 헤알(Real)이라는 새로운 통화로 대체했고, 헤알화의 환율을 미국 달러화에 거의 1:1의 비율로 연동시켰다. 이러한 고정환율제의 본래 의도는 급속히 떨어지는 브라질의 화폐가치를 고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슈퍼마켓 상품의 가격표가 쇼핑을 하는 중에도 실시간으로 바뀔 정도로 크루제이루화는 빠르게 폭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폐단위를 대폭 축소한 헤알화를 도입하고, 생필품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물가상승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카르도수의 이른바 “헤알 플랜”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히지만 이 역시 찰나일 뿐이었다. 선물과도 같던 고정환율제는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변모했고, 헤알화의 가치는 20% 하락했으며 인플레이션은 또다시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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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알 플랜으로 화폐단위가 1000분의 1로 간소해져 가격표를 교체하는 브라질 시민 (출처 : 이코노미스트)

새끼 손가락이 없는 남자가 일으킨 브라질

콜로르가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아쉽게 패한 노조위원장 출신의 후보가 있었다. 그는 일곱 살부터 거리에서 땅콩과 오렌지를 팔아야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었고, 열네 살부터는 선반공으로 일하다가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빈곤한 삶을 살았지만 당시 브라질 에서는 그 빈곤이 너무나 일상적이었기에 평범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청년은, 직접 노동자당을 창설해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바로 룰라 다 시우바다. 사실 그가 속한 노동자당은 “강한 정부”를 지향했다. 그동안 노동자당의 공약은 민간기업 국영화, 확장 재정, 토지 재분배 등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룰라는 당의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신자유주의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개혁을 시작했다. 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정적인 보수파를 등용하기도 했다. “가장이 되면 총각 때와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들은 대놓고 못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룰라는 실용주의 대통령이었다.

룰라는 우선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한 경제개혁을 따랐다. 룰라 이전 카르도수 정부는 IMF로부터 300억 달러의 차관을 받으면서 GDP의 3.75%를 재정 흑자로 유지하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룰라는 이 협약내용을 지속적으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한술 더 떠 목표치를 0.5% 올려 4.25%로 설정했다. 그리고는 보수적인 인사로 경제 분야 행정부서를 꾸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긴축 재정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이와 함께 그가 병행했던 것은 경제 질서를 제도적으로 확립하여 시장 거래를 촉진시키는 것이었다. 재산권을 보다 강력하게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고, 중소기업 수출세는 면제해주기도 했으며, 3달 걸리던 기업설립 절차를 3일 만에 끝내도록 간소화하였다. 이러한 제도 마련은 해외 기업과 거래할 수 있는 국내기업을 자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었고, 중국, 미국과 각각 수출확대, 투자유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무역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2008년 순외국인 직접 투자는 380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받은 외국인 투자 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금액이었다. 투자 활성화는 물가안정화를 동반한다. 콜로르, 카르도수 대통령이 그렇게 노력했어도 완전히 잡을 수 없던 인플레이션을, 룰라는 잡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룰라가 마냥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만 좇는 따라쟁이였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브라질 내 지역차원의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프로그램을 창안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4 볼사 파밀리아는 빈곤가정에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현금을 거저 주진 않았다. 수혜가정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야했고, 좀 자라면 직업교육을 받도록 해야 했으며, 해마다 예방접종도 시켜야만 했다. 조건을 준수하기로 약속하면, 남성가장이 아닌 어머니에게, 직불카드에 현금을 충전하여 생계비를 지급하였다. 시행 10년 후 발표된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볼사 파밀리아 기금의 94%가 가장 가난한 40%의 사람들에게 골고루 지급되었고, 지급된 금액의 대부분이 식량, 의류, 학용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 즉, 볼사 파밀리아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자녀교육을 조건부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단순히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과는 차별화된,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시도였다. GDP의 0.6%도 안 되는 예산으로 극빈층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지니계수를 15% 감소시킨 이 성공적인 프로그램5은 주변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 콜롬비아, 니카라과 등 몇몇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를 모방하였고, 이 역시 해당 국가의 빈곤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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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을 담아 지급된 볼사 파밀리아 직불 카드 (출처 : Calendario Bolsa Familia)

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위기

물가안정과 빈곤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룰라의 인기는, 경제가 성장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올라갔다. 2006년 재선은 거뜬했으며, 2010년 퇴임할 당시 룰라의 지지율은 87%에 육박할 정도였다. 룰라는 그렇게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의 교체라고 말하면서 세 번째 선거에 도전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당의 후보인 지우마 호세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그녀는 당선되었다. 그러나 호세프는 불운했다. 그녀가 집권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브라질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게 자원이란 축복이자 저주이다” 금융 역사가 에드워드 챈슬러가 최근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의 핵심 내용이다. 챈슬러가 조금만 더 일찍 칼럼을 썼다면, 브라질의 상황은 달라졌을까? 브라질이 수출하는 효자상품은 철광석, 석유, 곡물과 같은 천연자원이 대부분이다. 브라질과 같은 원자재 수출국의 가장 큰 약점은, 경제가 원자재 가격변동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룰라 집권 시기 경제개혁으로 기업이 늘어나고 투자가 활성화되었지만, 이는 원자재 산업에 집중되었다. 당시에는 원자재 가격이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경기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11년 후반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고, 원자재 가격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 세계 철광석의 50%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이 자국 금융위기로 수입 물량을 대폭 줄인 것이 타격이 컸다. 헤알화의 화폐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브라질의 물가는 다시 상승했다. 브라질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경제성장률의 둔화는 실업률 증가로 이어졌다. 2016년 현재에도 브라질에서는 하루 평균 282명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 쉽다. 갑작스런 경기 침체로 브라질 국민들은 슬퍼했고, 이내 분노했으며, 그 화살은 대통령에게 향했다. 설상가상으로 늘어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호세프는 세금과 수수료를 인상했고, 이는 타오르는 불에 끓는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 되었다. 호세프에 대한 민심이 떨어져나가는 상황에서 그녀와 관련한 정치스캔들이 터졌다. 브라질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가 브라질산 장비와 자재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이를 정재계 인사들에게 비밀리에 전달했다는 대규모 비리 사건이 드러났다. 여기에 호세프와 룰라가 연루되었다는 증거와 함께 그녀가 대선 전 국영은행들의 자금을 불법으로 전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호세프 탄핵안이 통과되기까지 이르렀다. 이에 호세프와 룰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탄핵안을 가결한 야당 의원들의 더 심각한 부정부패 증거를 내세우며 반발한다. 최종 탄핵안은 가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을 비롯한 반-호세프 세력은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를, 여당을 비롯한 찬-호세프 세력은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올림픽을 앞두고도 브라질 거리에는 노란색의 우파진영, 붉은 색의 좌파진영으로 나뉘어 알록달록한 시위물결이 한창이었다. 정치다툼에 여념이 없는 브라질 국민은 한낱 운동경기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는 듯하다. 브라질 여론조사업체 다탸폴라(Datafolha)에 따르면 브라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올림픽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을, 정작 브라질 국민은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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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프 탄핵 찬성 시위(좌)와 반대 시위(우) (출처 : AP통신, 연합뉴스)

남미 최초로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의 브라질은 기세등등하게 잘 닦인 길을 달려가던 중이었지만, 지금의 브라질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만 잔뜩 쌓아둔 채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원자재 중심의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하고, 치솟는 물가도 잠재워야 하며, 만연한 부정부패도 척결해야 한다. 엄청난 과제로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데, 이러한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국민이 양분되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은, 상황을 더욱 암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도무지 답이 보이질 않는 브라질에도 자세히 보면 몇 줄기 희망이 있다. 우선, 무역흑자가 나올 것이란 전망이 있다. 화폐가치가 떨어진 헤알화로 인해 오히려 수출경쟁력은 조금이나마 확보한 것이다. 2016년 상반기의 무역수지는 2012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헤알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대가 브라질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다음으로, 탄탄한 내수시장이다. 2억이 넘는 인구가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여 브라질의 내수 비중은 상당한 편이다. GDP대비 내수 비중이 80.5%에 달해 미국(86.4%), 일본(74.5%)과 같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탄탄한 내수로 인해 세계적 경기침체와 같은 대외 충격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융통성과 주체성을 두루 갖춘 역량이다. 서구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자국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여 동시에 시행한 국가는,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거의 유일하다. 외국의 사례를 끊임없이 조사한 후 필요하다면 차용하고, 브라질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연구에도 소홀하지 않는다면, 이전의 위기를 극복했듯 이번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올림픽을 무사히 마친 정열의 나라의 행보가 기대된다.

 


1 2003년 골드만삭스 보고서에서 2000년대를 전후해 경제가 급격히 성장한 Brazil, Russia, India, China를 일컫는 용어 BRICs가 처음 사용되었고, 이후 2010년 Republic of South Africa가 추가되면서 BRICS로 정립되었다.
2 개혁 이전 1989-1990년 중남미 평균 물가상승률은 940%였으나, 개혁 이후 1993-1994년에는 129%로 대폭 감소하였다.
3 세바스티안 에드워즈, 이은진 역, <포퓰리즘의 거짓 약속>(서울 : 살림, 2012), 331쪽.
4 포르투갈어로 볼사(bolsa)는 지갑 또는 현금을, 파밀리아(familia)는 가족을 의미한다.
5 2013년 세계은행은 10년만에 브라질 극빈층 비율이 9.7%에서 4.3%로 감소된 결과의 핵심 요인을 볼사 파밀리아로 꼽았다.


백지영 (연세대 사학)
jyb48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