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인물 솔로몬 놀섭의 <노예 12년>
영화 <노예 12년>은 실존 인물 솔로몬 놀섭이 집필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솔로몬은 미국 북부 뉴욕주(州)에 사는 흑인으로, 자유인 신분이었지만 납치를 당해 미국 남부에서 부당하게 1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노예 생활 12년은 미국 노예 전체의 삶을 완전히 대변할 수 없다. 솔로몬은 12년 후 자유를 되찾지만, 평생을 노예로 살며 온갖 학대를 당한 노예들이 더 많았다. 노예 해방 후에도 흑인들은 백인에게 재산으로서 예속되지만 않았을 뿐 숱하게 인권침해를 당했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흑인들은 12년보다 훨씬 긴 세월을 노예로 살았다.
자유의 나라 미국
170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으로 대량 유입되기 시작했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미합중국이 생겨나던 때에도 노예 문제는 건국 인사들 간에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남부에서 대농장을 경영하던 인사들의 영향력 때문에 노예제는 존속되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이후 링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약 72년 중 50년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모든 사람의 평등과 자유를 추구하는 독립 선언으로 수립된 미합중국이었지만, 노예는 자유의 주체로 간주되지 않았다.
목화 농장에 사용할 노동력이 필수였던 남부와 달리 비교적 농업의 비중이 낮았던 북부에서는 빠르게 노예제도가 사라졌다. 이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미 북부와 남부는 일시적으로 북위 36도 30분을 기준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북쪽의 ‘자유주(州)’, 그리고 노예제를 존속한 남쪽의 ‘노예주(州)’로 나누는 내용의 미주리 협정을 1820년 체결했다. 1808년 노예 수입이 금지되고, 미 남부에 노예 인구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미주리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에서는 자유주 내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 지역으로 팔아 넘기는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되었다.
<노예 12년>은 자유주와 노예주가 나뉘어 있던 시절 흔했던 흑인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흑인 솔로몬 놀섭은 자유인으로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백인 신사 몇 명에게 공연 제의를 받고 함께 워싱턴으로 떠난 솔로몬은 사실은 인신매매단이었던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남부에 노예로 팔리게 된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자신이 자유의 몸임을 주장하지만 그럴수록 가혹한 채찍질만 돌아올 뿐이었다. 솔로몬은 ‘플랫’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받아 조지아에서 도망친 노예로 12년 동안 두 명의 주인을 섬기며 노예 생활을 하게 된다.
솔로몬이 처음 만나는 주인은 포드이다. 그는 솔로몬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솔로몬의 본래 신분이 노예가 아님을 알게 된 후에도 포드는 그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진 않는다. 오히려 솔로몬이 문제를 일으킬까 우려한 포드는 그를 루이지애나주로 팔아버린다. 솔로몬은 여기서 두 번째로 앱스라는 주인을 만나게 된다. 악덕 노예주 앱스는 루이지애나주의 목화 농장 지주로, 노예들을 마구잡이로 채찍질하는 등 잔혹하게 학대한다. 앱스는 노예 중 한 명인 ‘팻시’를 마음에 두고 그녀에게 집착하는데, 그는 팻시를 성노예로까지 부리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진 못하는 인물이다. 팻시를 향한 앱스의 애정에 질투를 느낀 앱스 부인은 팻시에게 가혹하게 군다. 이유 없이 얼굴에 술병을 맞고, 손톱으로 긁히고, 씻지 못하도록 비누조차 허락 받지 못한 팻시는 노예로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솔로몬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까지 부탁하지만, 솔로몬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둘은 서로에 의지하며 힘겨운 삶을 산다. <노예 12년>에서 그리는 노예들은 주체적으로 살아갈 의지는커녕 마음대로 생을 마감할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자유의 나라’ 미국의 역사에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덤덤하게 날 것으로 보여준다.
‘Run Nigger Run’과 ‘Roll Jordan Roll’
빠른 화면 전환이나 과장으로 시청자를 자극하는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만듦새가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노예 12년>은 갈등이 지속적으로 고조되다가 대단원을 이루는 구성이 아닐뿐더러 인물의 얼굴이나 한 풍경을 오랫동안 잡는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느린 영화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영화가 충분히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영화 보기가 불편해 상영관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다. 이는 영화가 노예들의 참담했던 삶을 여과 없이 그리고 효과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학대 당하는 노예를 시각적으로도 여과 없이 표현하지만 청각도 십분 이용한다. 작중 등장하는 ‘Run Nigger Run’과 ‘Roll Jordan Roll’라는 노래는 삽입된 배경음악이 아니라 씬 내에서 등장인물들이 직접 부른 것이다. ‘Run Nigger Run’과 ‘Roll Jordan Roll’ 두 곡 모두 1867년에 발간된 Slave Songs of the United States이라는 선집에 실렸는데, 이 선집은 최초로 흑인 민요를 대중화한 것이라고 한다. ‘Roll Jordan Roll’는 이 선집의 첫 번째 곡으로, 지금까지도 가스펠 음악의 표본으로 전해내려온다.
영화에서 ‘Run Nigger Run’은 솔로몬이 포드의 노예일 때 노예 관리인 티가 부르는노래다. 이 곡은 노예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내용인데 솔로몬이 처음 노예로 팔려가서 들은 노래인 만큼 솔로몬이 자신이 노예로서 고된 노동을 시작해야 함을 자각하게 된다. 가사에는 ‘pattyroller’들이 도망치는 너희들 잡을 거라며 위협하는 내용이 있는데(Run nigger run well the pattyroller will get you / Run nigger run well you better get away) 여기서 등장하는 ‘pattyroller’는 도망 노예들을 잡아들이는 정부에 고용된 민병대이다. 빠른 템포의 이 곡은 노예들을 놀리는 듯, 위협을 즐기는 듯한 티빗이 노래가 진행될수록 본인의 노래에 심취하는 것이 재미있다.
재즈, 래그타임,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등 흑인이 음악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크다. ‘Roll Jordan Roll’은 흑인 영가(Negro Spiritual) 전통의 토대가 되는 텍스트이다. <노예 12년>의 곡은 영화를 위해 새로이 작곡한 것이며, Roll Jordan Roll의 버전은 다양하다. 영화에서 ‘Roll Jordan Roll’이 나오는 부분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이 흡입력 있고 강렬하다. 이 곡은 앱스의 목화 농장에서 땡볕 아래 일하던 노예가 목화를 따다 쓰러져 죽고 마는데, 노예들이 그를 묻고 부르는 노래다. 노래를 시작하는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과 처음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다가 점점 온 마음을 다해 노랠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솔로몬의 눈빛이 노래의 가락에 더해져 관객의 마음을 후빈다.
생존하는 것, 사는 것
솔로몬이 납치되어 노예주로 이송될 때 하는 말이 있다. “I don’t want to survive. I want to live.”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순응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에게 솔로몬은, 단순히 생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솔로몬은 노예로 생활하며 계속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탈출을 꿈꾼다. 심부름을 가다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릴 궁리도 하고 몰래 종이를 훔치고 라즈베리즙으로 잉크를 만들어 자신의 사정을 적은 편지를 써 보내려고도 한다. 비록 이러한 노력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 때문에 위기에도 빠지지만 솔로몬은 탈출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그는 캐나다 목수 배스의 도움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편지를 자신의 친구들에게 보내게 되어 자유를 되찾게 된다.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솔로몬의 노력이 영화의 끝에서야 결실을 맺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솔로몬이 공개처형을 당하려다 겨우 살아남는 장면이다. 평소에 솔로몬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무능력한 노예 관리인 티빗이 솔로몬에게 부당하게 굴자 솔로몬은 그와 싸움에 말려들게 되는데, 솔로몬에게 폭행을 당한 티빗은 다른 백인들까지 데려와 솔로몬을 묶어 나무에 걸고 처형하려고 한다. 린칭(lynching)이라고 불렸던 공개처형은 당시 노예들에게 흔히 가해졌던 벌이다. 주인 포드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은 중단되지만, 솔로몬은 발 끝만 간신히 땅에 닿은 채로 포드가 올 때까지 나무에 걸려 있게 된다. 솔로몬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자, 스크린은 푹푹 꺼지는 진흙 바닥을 디디고 또 디디는 솔로몬의 발을 오랫동안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장면은 단순히 까치발로 버티는 의지의 발만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장이라도 죽을 위기에 처한 솔로몬이 존재하지도 않는 듯 무감각하게 반응하는 다른 노예들이다. 배경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잔디밭에서 뛰어 놀고 성인 노예들은 자신의 역할을 조용히 수행해나간다. 노예의 인권이 얼마나 당연하게 짓밟혔고 노예들은 얼마나 이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살고자 노력하지만 생존하는 것도 버겁고 어려운 솔로몬의 삶을 통해 당시 노예들의 참담한 현실을 말하고자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솔로몬이지만 그만큼이나 주목 받는 인물이 팻시다. 팻시는 앱스의 노예들 중 가장 심한 학대를 받았다. 그녀는 미국 노예제도의 참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노예 해방 후에도 수많은 팻시들은 학대와 차별을 이겨내야만 했다. 국가 조차 그들에 대한 차별을 ‘분리만 할 뿐 동등’하다고 주장했고 차별을 정당화했다. 그들은 언제쯤 진정한 해방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2014. 7. 30
김정연(이화여대 국제학)
jylove992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