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장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국가의 분열과 병합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굳이 로마제국의 분열과 멸망 혹은 USSR의 해체와 독립국가들의 탄생을 예로 들지 않아도 이와 같은 사실은 자명하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일어나는 분리독립운동 역시 한 민족의 자연스러운 의지의 표출이며 국가의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 얽힌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 구도를 알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관점을 차치하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그 이면에 감춰진 의미를 들춰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 우크라이나인가?
14년 2월 친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EU 통합을 주장하는 “유로마이단”에 의해서 축출되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러시아계 민족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크림반도를 침공한다. 러시아의 동향에 따라 독립을 주장하는 동부 지역(돈바스)의 친러 반군이 러시아 정부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국지전을 벌이게 된다. 이에 14년 3월과 7월, 미국과 EU는 러시아의 동부 우크라이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경제제재를 결정한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특성상 러시아와 유럽의 안보에 있어서 주요한 지역이다. 동부 우크라이나 인종 구성은 러시아 계 민족이 주를 이루고 있어 친 러시아 성향이 강하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역시 정치 활동 초기에 도네츠크(우크라이나 동부의 공업지대)의 주지사를 역임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위치한 크림반도의 경우 60% 이상이 러시아 계 인종이며 종교적으로는 대다수가 러시아 정교를 믿는다. 반면, 서부 우크라이나는 히틀러에 의해 동부 지역보다 일찍 소련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지역적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친 유럽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성향이 다른 두 지역은 통합이 아닌 분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국가 안보 보좌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는 “우크라이나의 한 지역이 다른 지역을 지배하려 하는 시도는 결국 내전이나 분열로 이어졌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라고 말한다. 러시아에 있어 접경 지역에서의 갈등은 가장 주요한 안보 이슈이며, 이러한 우크라이나 내부에서의 내전과 분란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이에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를 위해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자연스러운 대응을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에 강력한 위협이 된다. EU로 대표되는 유럽 국가들은 나름대로 국가 안보를 위해 러시아에 맞서 정치적, 군사적 대비를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카터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도전세력이 유라시아에서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분쟁 여지가 줄어들고 러시아 혹은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온전히 포섭한다면 아시아와 유럽은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지역질서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중동, 유럽이 밀접하게 교류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대한 지역질서가 형성된다면 미국의 경제적 위상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최근 미국 내 중국 위협론이 부각되고, G2 구도에 대한 예상이 계속해서 나오는 시점에서 유라시아 지역의 통합과 수정주의 국가로서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서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