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쥔 왕서방, 그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1월 23일 시진핑 중국 주석은 테헤란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만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지난 16일에 미국과 EU의 대(對) 이란 제재가 해제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중국의 발 빠른 행보가 눈에 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졌다

양국이 협력을 약속함에 따라 중국은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한 번 확대하게 되었다. 최근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중동에서는 특히 그러한 구도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중동 순방 일정 중에 중국을 “중동 평화의 건설자”라고 칭하며 노골적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할 의도를 드러냈다. 중국이 중동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은 팔레스타인에 약 90억 원 규모의 무상원조를 약속했고 이집트와는 18조 원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패트릭 크로닉 미국 아태 안보프로그램 선임국장은 “중국은 미국의 힘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중동에서 혼란스런 정국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강대국으로 인식되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서구가 이란을 상대로 오랜 시간을 들여 얻어낸 성과를 이용해 왕서방은 자신의 몫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비단 중동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몇몇 전문가들이 중국의 내부문제 등을 근거로 중국 경제 성장의 한계를 이야기해왔지만 현재 상황에서 중국이 세계 각지에서 경제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초기부터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우방국인 영국까지 포섭하며 성공적으로 출범했다.

서방 국가들은 처음엔 이러한 중국의 행보에 위협을 느껴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그로부터 나오는 경제적 이익을 나눠먹으려고만 하는 듯하다. 전세계가 경제 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성장이 경색 국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영국을 방문할 때 버킹엄 궁전 앞에는 중국 국기가 내걸렸고 시 주석은 최고의 환대를 받았다. 영국 정부는 시 주석의 방문을 앞두고 중국 인권 상황에 대해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 인권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영국 노동당 또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당수는 시 주석의 방문에 앞서 중국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전할 것이라고 공언해왔으나, 정작 회담 자리에서 인권 문제는 회담 말미에 잠깐 언급하는 데 그쳤다. 반면 그는 “6억 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중국의 놀라운 성취”에 찬사를 보내며 시종일관 시 주석에 대해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BBC, 가디언 등 영국 언론사들에서는 중국의 인권문제, 국제적 해킹 문제 등을 지적하고 나섰으나, 그러한 외침이 늘어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넘어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시진핑

국빈 자격으로 영국 버킹엄 궁전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영국 의장대 [출처 로이터]

새로울 것 없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중국의 이른바 ‘신형대국관계’ 전략의 효과다. 중국은 기존의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구도의 국제 관계를 넘어 상호협력과 상생을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재편하겠다고 강조했다. ‘신형’ 대국관계란 말 그대로 갈등과 반목을 바탕으로 했던 ‘구형’ 대국관계를 버리고 모든 국가들이 협력을 통해 나아가는 새로운 관계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국제적으로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며 국제사회에 우호적인 인상을 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AIIB가 처음에 많은 비판을 받았던 이유도 중국이 이를 바탕으로 경제 패권을 휘두를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니 중국이 내건 기준은 비교적 합리적이었다. 중국은 AIIB의 의사결정구조가 중국의 입김에 좌우될 것이라는 비판을 받자 AIIB의 투자결정을 이사회에 맡기도록 했다. 그리고 협정문에 ‘건전한 은행업의 원칙에 따라 자금을 제공한다.’는 기준을 명시하여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는 투자를 제한할 이른바 ‘세이프가드’ 조항도 두었다. 이에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등 몇몇 세계 주요 언론사들은 중국의 부상이 사실 우려할 정도로 미국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처럼 기존의 독단적인 모습을 버리고 좀 더 국제사회에 융화되는 모습을 보인 덕에 중국은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현재 세계를 상대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새로운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AIIB나 경제협력 등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국제적 표준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분쟁이나 북핵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남중국해 분쟁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북핵 문제에 관해서도 중국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국제 사회와 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고 있다. 상호협력과 상생이라는 신형대국관계의 구호는 국익 앞에서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모든 국가는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두게 되어 있다. 협력을 통해 기존의 승자와 패자 중심의 구도를 타파하겠다던 신형대국관계란 것도 새로울 게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란 필요한 곳에서는 국제적 기준을 따라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국익을 챙기기 위한 전략적인 외교 수사의 일면일 뿐이다.

 

인권 문제를 둘러싼 헤게모니 전쟁

이처럼 중국이 경제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내부의 윤리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이후, 중국은 티베트를 ‘하나의 중국’에 완전히 편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와 독립 움직임은 가차없이 응징했다. 미국의 인권단체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는 최근 2014년 폐지할 계획이었던 ‘농촌공작대’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농촌공작대는 티베트의 반동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티베트 전역의 농촌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단체로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탄압을 피해 지금도 많은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망명하고 있고,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반대하는 티베트의 승려들이 집단 분신자살을 하는 등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데 중국은 내내 탄압 정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주미중국대사관 티베트 시위

주미 중국대사관 앞에서 티베트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티베트인들

또한 국제 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은 작년 11월 중국 고문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보고를 보면 중국의 인권 유린 실태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문은 주로 국가 안보의 명목 하에 이루어졌는데 중국 내 인권을 문제 삼은 변호사들, 체제에 반하는 소수민족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잠을 재우지 않거나 음식을 주지 않는 고문, 손목을 꺾거나 얼굴을 가격하는 등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고문 등 그 행태도 다양했다. 그리고 고문에 의한 자백은 대부분의 경우 정식 증거로 채택되었다. 현대적 사법 시스템이 익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일이지만 중국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중국 경찰, 검찰, 법원의 유착으로 이와 같은 문제의 해결이 요원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중국의 인권 상황은 심각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신들의 인권 상황에 대한 비판에 대항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나라들의 인권 문제까지 걸고 넘어지고 있다. 류샤오밍 주영 중국대사는 중국인권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BBC에 대해 영국의 인권 상황은 완벽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작년에는 미 국무부가 발행하는 ‘2014 나라별 인권보고서’에 대항해 ‘2014년 미국의 인권기록’을 발표해 미국 내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이 세계 인권 수호의 헌병 역할을 자처해온 미국과 영국 두 국가의 인권 상황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왕서방은 마냥 친절한 부자아저씨가 아니다.

류샤오밍 중국대사

류샤오밍 중국대사가 BBC 뉴스나이트에 출연해 중국의 인권문제를 놓고 진행자와 설전을 벌이고 있다. [출처 BBC, 유투브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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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국이 다른 나라들의 인권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헤게모니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증가하는 중국의 경제적 권력과 헤게모니적 지배는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과거 중국 패권 대두의 가능성을 점치던 전문가들이 중국 패권의 가능성을 부인할 때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곤 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영어를 배운다. 그에 비해 중국은 국제 사회를 포용할만한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방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은 결국 세계의 보편적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명령에 기인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의 인권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이처럼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지던 인권 문제에 대해 되려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구 사회가 경제 협력만을 추구하여 중국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외교적 차원의 실효성 있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동안 그들이 갖고 있던 헤게모니적 우월성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국제사회의 과제

패권국이 패권을 얻어나가는 과정에는 부수적 피해가 있다는 것을 역사가 알려주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이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과정 속에는 수많은 식민지 국가들의 피해와 전쟁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부수적 피해가 패권국에게 부메랑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중국은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세계 누구도 중국의 경제력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요동치는 중국 증시와 중국이 떠안고 있는 부패, 양극화 등 내부 문제들을 생각해볼 때 중국의 미래도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국제적 기준에 발맞추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따라와주지 않는다면 이는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편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 경제적 협력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헤게모니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또한 직시해야 한다. 협력할 부분에 대해서는 협력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닉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던 헨리 키신저 박사는 2011년 중국의 패권에 관해 캐나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의 부상은 불가피하며 문제는 그러한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입니다. 아울러 중국은 설정될 수 있는 어떤 한계 안에서 스스로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부상은 이미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국제사회가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부수적 피해를 줄일 수 있겠냐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박상빈 (고려대 사학)
patrickands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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