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 2016 1월

민중의 쟁취, 강대국의 방기. 독립이 2% 부족할 때

Prison_Release_of_Korean_activists

1945년 8월 15일 12시 쇼와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다. 일본 지배 하에 있던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는다.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제국은 유럽 내에서 안정적인 영향력을 확보한다. 그것은 어설픈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당시 독일 제국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지나친 확장이 독일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한 판단 하에 독일은 전쟁의 승리 후 비팽창주의 즉, “명예로운 고립”을 선언한다. 비스마르크는 국내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여 내실 있는 국가 발전에 힘쓴다.

냉소적으로 보자면, 비스마르크는 제국주의 후발자로서의 팽창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내부적 상황에 기인하는데, 2차 산업 혁명 이후 독일 내부에는 노동자 수가 급증했으며, 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급여, 고용 안정과 같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1880년을 전후로 하여 독일에는 사회주의 분위기가 고착화되고, 사회당(SPD)이 정치권에서 실질적인 힘을 갖게 된다. 굳이 이론화하지 않아도 국가의 내부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대외적 팽창을 꿈 꿀 수 없다. 즉, 비스마르크가 직면한 독일 내부의 불안정성 문제는 곧 유럽 내 독일의 지위 안정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벌써 100년도 더 된 비스마르크의 정책 결정 맥락을 들으니 중국의 대외 노선이 떠오른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 유소작위(韜光養晦 有所作爲, 그늘 뒤에 숨어 힘을 키우고 때를 기다린다)”라는 경구를 들어, 밖으로 뻗어나가는 중국 대신 내부의 힘을 기르는 중국을 대외적으로 천명한다. 그의 발언은 1990년에 나온 것이며,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보면 소련이 붕괴하고 일본은 버블경제 붕괴의 여파를 간신히 빠져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역내 패권을 잡을 기회를 다시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덩샤오핑에게 중요한 목표는 외부적 팽창과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의 정립이 아니라, 직전에 있었던 1989년의 천안문 사태로 인한 민주주의의 태동이었다. 최근에야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책임대국”, 주변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끄는 가운데 국가의 힘을 키워나가겠다는 “화평굴기”가 대외정책 노선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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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안보 법안 통과로 새 국면을 맞이한 동아시아 정세

지난 9월 19일 새벽 2시18분, 일본 도쿄의 국회 참의원 본회의에서는 집단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기존 법률 개정안 10개와 신설 법안‘국제평화지원법’1개의 총 11개의 안보법안이 통과되었다. 자민당과 공민당 연립의 여당세력은 절반이 훨씬 넘는 의석수를 앞세워 찬성 148표, 반대 90표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아베 정권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학생을 포함한 수만 명의 시민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한 100여 명의 일본 헌법학자들은 위헌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2014년 5월 15일 자국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평화헌법 제9조에 대한 헌법해석변경을 선언했기에 안보법안은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의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헌법의 2장 제 9조 2항 ‘앞 항의 목적 달성을 위해’라는 표현이 관건이다. 1948년 작성 당시‘앞 항의 목적’은‘국제평화희구’라는 표현 중복을 위해 사용 되었지만, 아베 총리는 동맹국, 주변국이 공격받아도 무력행사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그 해석의 범위를 넓혔다. 이와 함께 자위대 활동 범위도 전 세계로 확장되어 본질적으로 70년 만에 다시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이에 대해 주변 국가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안보법에서 명시하는 ‘중요영향사태’, ‘존립위기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이 없어 이에 대한 일본의 자의적인 해석 및 무력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과 영토분쟁 중에 있는 중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고 비난하며, 이웃 국가들의 우려를 고려하여 지역안정과 평화정책을 실행해야한다고 밝혔다. 한국 역시 일본이 평화헌법의 정신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투명하고 지역 안정을 지향하는 안보정책을 실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미 국무부는 안보법이 통과된 뒤 성명을 통해“우리는 동맹을 강화하고 지역과 국제 안보 활동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북 억제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남중국해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해양대국을 꿈꾸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정상교 (성균관대, 중어중문)

skj5863@naver.com

2015 미얀마 총선 – 민주화를 향한 문을 열어줄 것인가

Myanmar pro-democracy leader Aung San Suu Kyi and UNHCR special envoy Angelina Jolie Pitt arrive at a hostel for female factory workers in the Hlaingtaryar Industrial Zone in Yangon

지난 7월 말,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미얀마 방문이 있었다. 그녀는 2001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미얀마 방문에서도 카친주(州)의 난민촌을 방문하고,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실태를 살펴보는 등 매우 뜻깊은 일정을 소화했다. 세계적인 스타가 자신의 안위에만 만족하지 않고, 지구 반대편 나라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본 기사에서 주목할 인물은 안젤리나 졸리가 아닌, 그녀와 함께 공장을 방문한 아웅 산 수치(Aung San SuuKyi) 여사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가 다녀간들 자국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당국 정치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야당의 수장이며, 안젤리나 졸리를 미얀마에 초청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어도 미얀마 국민들에겐 안젤리나 졸리보다 더 의미 있고 존경 받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지금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의 수장으로서 다가오는 11월에 있을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미얀마는 올해 11월 8일에 총선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나 이번 총선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는 사실상 첫 자유투표로 진행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2010년 총선을 통해 공식적으로는 군부정권을 민간정부로 이양했지만, 당시 NLD는총선 참가를 거부했다. 허울뿐인 민주주의는 오히려 군부에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라는 태도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에서도 “이번 총선이 불공정하고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평가했다. 군사정권은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일부 군부 세력을 통합단결발전당(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USDP)으로 편입시키고 지원해주는 등의 불공정한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그 결과 2010년 총선에서 USDP는 상·하원 모두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이뤘고, 이듬해 USDP에서 출마한 테인 세인(TheinSein)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이 중요한 이유는 비단 첫 자유선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이어지는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현재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다.대통령 후보로는 상·하원에서 각각 1명, 상·하원에서 각각 의석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군부에서 1명을 추천함으로써 총 3명이 지명된다. 그 다음, 후보자 3명을 놓고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선거를 실시하고, 그 결과 최다득표자가 대통령, 나머지 2명은 부통령에 임명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각 정당이 의회를 얼마나 장악하는지는 국가의 수장을 뽑는 대선에서의 영향력을 결정 짓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야당 NLD의 입장에서는 자당(自黨)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아웅 산 수치 여사의 대선 출마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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