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 2014 8월

평화를 꿈꾸는 새로운 방식 :Muse의 ‘United States of Eur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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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부터 시작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충돌로 가자에서만 2천 명 가까이 사망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7월 한달 간 2천 명이 학살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민간 항공기가 격추되면서 300명 가까이 사망했고, 이라크에서는 내전으로 두 달 동안 4천 명 이상 죽었다. 2014년 전반기,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 위에서 수천의 목숨이 국가간·민족간 충돌로 사라졌다. 평화는 요원하다. 이라크와 우크라이나 내전은 현재진행형이고, 중국 정부는 위구르 독립에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휴전은 위태롭다.

 

독특한 멜로디, 독특한 이벤트

2009년 7월, 영국의 한 유명 락밴드가 앨범 출시를 기념하며 ‘프로젝트 유라시아’라는 거창한 이름의 이벤트를 개최했다. 이벤트 웹페이지인 ‘Ununited States of Eurasia’에는 검게 칠해진 유라시아 대륙 사진 한 장과 함께 ‘유라시아를 통합’하라는 오묘한 지령이 올라왔다. 이벤트 내용은 유라시아 대륙 내 6개 국가에 배치된 ‘스테이션’과 거기에 배치된 ‘요원’들을 찾아 암호를 받아내는, 일종의 보물찾기였다. 한 팬이 첫 번째 장소인 파리에서 요원을 찾아냈고, 암호가 담긴 USB를 받아 이벤트 페이지에 입력하자, 다음 요원의 위치와 함께 새 앨범의 수록곡 ‘United States of Eurasia’의 1/6이 공개되었다. 여섯 요원들을 성공적으로 찾아낼 경우,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음원 한 곡이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되는 ‘보상’이 주어질 터였다. 홍콩을 마지막으로, 팬들은 6일만에 모든 요원들을 찾아냈다.


↑’United States of Eurasia’ Youtube 링크

이 이벤트를 주최한 3인조 락밴드 뮤즈(Muse)는 다섯 번째 앨범을 통해 ‘United States of Eurasia(유라시아합중국)’라는 개성 있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에는 발라드와 락, 오페라의 요소가 뒤섞여있어, 앨범 발매 당시 한 평론지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와 이 곡을 비교하기도 했다. 곡은 메인 보컬 매튜 벨라미의 잔잔한 발라드로 시작해 이윽고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추가되며, 간주 부분에는 ‘동양적인’ 느낌의 피아노 가락이 삽입된다. 노래의 클라이막스에서 보컬이 정열적으로 ‘유라시아’를 몇 차례 외친 후, 곡의 아웃트로인 ‘+Collateral Damage’ 부분으로 넘어간다. ‘콜래트럴 대미지’에서는 쇼팽의 녹턴이 중심 가락을 이룬 채 바이올린 반주와 보컬의 허밍,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전투기 소리 등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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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합중국’으로 하나되는 유라시아

‘유라시아 합중국’이라는 곡의 제목에는, 유라시아 대륙 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이 해결되고 총성과 포화가 멎어, 거대한 대륙 전체가 마치 지금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처럼 하나의 연합체로 화한다는 상상이 담겨있다. 가사에 따르면, 지금 유라시아 대륙 위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은 “결코 끝날 수 없다”. 이 전쟁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모두들 전쟁이 계속될 거라 약속할 뿐.” “우리는 반드시 시키는 대로 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가 될 수도 있는 공동체를 굳이 분열시키면서까지.”

아웃트로의 제목인 ‘콜래트럴 대미지(부수적 피해)’는 보통 전쟁에서 민간인·도시 등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3자의 피해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전쟁의 참상을 가장 압축적이고 무미건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쇼팽의 선율이 시작될 때 볼륨을 키우면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부드러운 피아노 가락이 일상의 소음과 어울리며 듣는 이로 하여금 평화로운 나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안정된 분위기는 곧 전투기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와 조종사들이 교전하는 소리에 파묻히게 된다. 폭발음이나 비명, 직접적인 가사 전달 없이도 일상의 평온함과 전운의 긴장감이 효과적으로, 그리고 세련되게 대비되면서, 전투기의 이륙 소리와 함께 5분 40초가 넘는 긴 곡이 끝나게 된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뮤즈는 한 평론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과 조지 오웰의 <1984>에 영향을 받아 쓰였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유라시아’의 첫 미션이 발표됐을 때에는 <거대한 체스판>의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힌트 페이지에 마치 군사 암호처럼 쓰여있기도 했다.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조지 오웰로부터는 아마 세계가 앞으로 세 개의 거대한 합중국에 의해 분할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 같다. 다만 뮤즈는 그러한 통합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라시아 내 평화 유지에 기여할 것이라고 봄으로써 선배 예술가의 상상력을 살짝 비틀었다.

브레진스키와 관련해서 뮤즈는 이 외교 노장의 아이디어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브레진스키는 지미 카터 시절부터 백악관 외교·안보 분야의 ‘큰 손’이었다. 그는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외정책을 구상한 인물이었다. <거대한 체스판>은 그가 후학을 위해 남긴 다소 ‘노골적인’ 국제 전략 지침서다. ‘United States of Eurasia’는 아마도, 유라시아 각지에서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 책의 중심 명제에 대한 반동으로서 처음 구상된 것 같다. 미국 주도의 단극질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브레진스키의 ‘솔직한’ 논조는 충분히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뮤즈가 제시한 유라시아 합중국은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를 대체할 매우 이상주의적인 정치 모델이었다.

 

The Resistance

6개국 요원이 모두 발견되어 ‘프로젝트 유라시아’가 종료될 무렵, 이벤트 페이지에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다. 유라시아는 ‘성공적으로 통합’되었고 이로써 ‘유라시아 합중국이 탄생’했지만, 아직 국가로서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기존의 월드파워인 미국에게 ‘승인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 내 숨어있는 요원에게 또 다른 코드를 받아 입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전 단계들과는 다르게 이번 미션은 시간제한이 있었다. 시간 내에 미션을 달성할 경우 ‘United States of Eurasia’ 전곡과 아웃트로 ‘Collateral Damage’가 모두 공개될 것이었지만, 만약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즉, 국가로서 승인 받지 못할 경우), ‘저항군(The Resistance)을 동원한다’는 경고가 함께 표시되었다. 여기서 ‘저항군의 동원’은 같은 앨범의 다른 곡 ‘The Resistance’가 대신 공개됨을 의미하는 말장난이었다.

‘승인’ 이벤트는, 유라시아의 통합과 연대에 있어 미국은 ‘타자’일 뿐임을 암시한다. 또한 여기에는 유라시아 위에서 벌어지는 분쟁들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적 책임과 통제 능력을 비판적으로 재고해봐야 한다는 생각 역시 깔려있다. 애초에 곡 제목을 ‘United States of the Earth’처럼 전세계를 아우르지 않고 유라시아에 한정한 것을 통해, 이 상상의 공동체가 갖는 내적 포용성과 외적 배타성을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2009년 7월 21일, 한 팬이 뉴욕에서 요원을 찾아냄으로써 ‘United States of Eurasia +Collateral Damage’ 전곡이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되었고, 프로젝트 유라시아는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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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평화

뮤즈와 브레진스키는 상반된 두 시각으로 국제 정세를 바라봤다. 그러나 국제 정세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 지향점까지 다를까. 브레진스키는 지난달 22일,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더 이상 혼자서 세계 전반을 책임지려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럴 역량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은 중국을 파트너로 삼아 국제 정세에 선별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며, 아시아에서 중국의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최근 가자 지구를 공습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러시아를 강도 높게 비난했으며, 일본의 역사 문제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문제에 있어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오랫동안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동 지역에 대해서는, 미국이 ‘이란 포용’과 ‘이란·터키·이스라엘과의 연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개 국가 체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과정이나 방식이야 어찌됐건, 평화를 바라보는 모순된 두 시각의 끝은 서로 닿아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만희(고려대 국문)

manhee87011@naver.com

모디의 인도, 이거 그린라이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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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
2014년 4월 10일, 델리에 거주하는 한 대학생은 아침 일찍 일어나 투표할 준비를 한다. 투표소에 가니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다. 전통의상인 사리(Saree)와 펀자비(Punjabi)를 입고 마치 축제에 온 것 같이 들뜬 모습의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총선투표는 전자투표로 진행된다. 역시 IT 강국이다. 투표용지를 받으니, 손바닥(인도국민회의당 INC: Indian National Congress), 연꽃(인도국민당 BJP: Bharatiya Janata Party) 등 8개 정당의 상징이 나와있다. 이는 전 인구의 30%가 문맹인 것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총 유권자 8억 1450만 명, 선거기간 5주(4월 7일~5월 12일),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 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인도는 세계 2위의 인구대국이며, 28개 주와 7개 연방 직할지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이다. 상징적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연방 의회와 주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연방정부의 실권자인 총리는 하원(로크사바)의 다수당이 추천권을 가지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4월 7일부터 5월 12일까지 실시된 16대 총선으로 집권당이 10년간 집권해오던 인도국민회의당(INC)에서 인도국민당(BJP)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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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판 케네디가(家), 네루-간디 가문
영국 식민통치기에 ‘스와라지(완전자치)’와 ‘스와데시(국산품 애용 운동)’ 등 벵골 분할령 이후 반영운동을 벌인 인도국민회의가 지금의 INC의 모태이다. 네루(집권기간 1947-64)를 비롯해 네루의 딸인 인드라 간디(1966-77, 1980-84), 네루의 외손자인 라지브 간디(1984-89)를 배출했다. 라지브 간디 아내인 이탈리아 출신의 소냐 간디가 INC의 총재로 이번 16대 총선을 진두지휘 했다. 16대 총선을 발판으로 소냐 간디의 아들인 라훌간디 인도국민회의(INC) 부총재가 차기 총리가 되고자 하였으나 전체 하원(록사바) 의석 543석 중 단 44석을 얻는 참패를 당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NC는 인도 독립 후부터 이어온 빈곤층 구제를 위한 사회보장 제도, 카스트 제도 폐지 등 분배에 방점을 둔 ‘네루식 사회주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현재도 빈곤층 식량지원, 농촌 출신 노동자들의 고용 지원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인도국민들에게 최대 문제는 경제였다. 성장률 저하와 치솟는 물가와 만연한 부정부패는 국민들이 INC 정부에 등을 돌리게 하였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 9.6%, 2011년 6.9%, 2012년 3.2%, 2013년 4.4%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가파른 속도로 둔화되었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2010년 12%, 2012년 9.3% 등 높은 수준을 기록하였다.

더딘 경제성장의 원인 중 하나로 만연한 부정부패를 들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3년도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인도는 177개국 중 94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2008년 발생한 2세대 통신망 입찰 비리는 인도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통신부 장관과 총리실이 연루되었다. 총 390억 달러(한화 40조1700억 원) 규모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인도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잘 보여준다. 또 2010년 적격 심사 없이 초단파 통신망 사업을 민간 기업에 입찰하면서 생긴 비리는 당시 여당인 인도 INC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현재도 조사 중이다. 이와 같이 경제정책의 실패와 거듭된 부정부패 사건들은 국민들이 집권세력인 INC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키우게 하였다.
Again 1998, BJP
5월 16일 인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속한 BJP가 전체 하원(로크사바)의석 543석 중 282석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정당간 연정 없이 과반수를 얻기 힘든 인도정계에서 30년 만에 최대 의석 수를 기록했다. 이로써 BJP는 여당이 되었고 모디는 인도 15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BJP는 힌두민족주의와 친기업, 친시장 정책 등 경제자유화를 지지하는 정당이다. 1998년 국민의회INC의 무능과 부정부패, 그리고 힌두 민족주의에 힘입어 집권에 성공했다. IT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 섬유산업의 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금융개혁 정책 등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집권 기간(1998-2004) 동안 연평균 6%의 경제 성장률, 특히 총선 직전(2003-2004)에는 8.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제정책이 도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어서 농촌이나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체감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BJP는 자신들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에 취해 있었다. 그 결과 다음 총선에서 비 도시중산층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BJP는 어렵게 얻은 정권을 다시 INC에 넘기고 야당이 되었다.

 

짜이왈라에서 ‘구자라트 모델’ 신화로
모디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의 인도 4개 카스트 중 피지배계급인 바이샤(농민, 상인)와 수드라(하급 노동자) 사이에 위치한 ‘간치’계급에 속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짜이왈라’(인도식 홍차인 짜이를 파는 상인)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직후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자원봉사단(RSS)에 가입해 정치에 입문한다. 이후 민족자원봉사단(RSS)의 정치 기구로서 1980년 BJP가 창당되고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2001년 구자라트 주 총리 선거에 나서 당선된 후 세 차례 연임되었다. 주 총리 역임 기간(2001~2014), 구자라트 주는 평균 9.8%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인도 굴지의 기업인 타타의 자동차 모델인 ‘나노’의 생산공장을 공들여 유치하였고, 미국의 포드와 프랑스의 푸조 등 해외기업들의 러브콜이 쇄도하였다. 2003년부터 주정부 차원의 비즈니스 정상회담을 격년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 회담은 재계지도자들의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한 행사로 2013년 121개국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거대해졌다. 이처럼 모디는 적극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기업들을 유치하는 등 철저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폈다. 외국기업의 토지수용 문제 해결을 위해 토지은행 제도를 도입하고 주정부지원협약을 통해 투자계획 승인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3년 이내에 마치도록 보장하기도 했다. 또 만성적으로 전기가 부족해 정전이 다반사인 인도에서 구자라트주는 송전방식의 획기적 변화 등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유일하게 전기가 남아도는 주가 되었다. 이와 같은 구자라트주의 놀라운 발전에서 ‘구자라트 모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유능한 행정가와 집단 학살자의 두 얼굴
인도 델리의 뉴스 전문 체널인 CNN-IBN의 카란 타파르 앵커가 인터뷰를 시작하며 모디의 업적을 말하면서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얼굴을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집단 학살자를 떠올린다. 당신이 무슬림에 편견을 갖고 있다고 그들은 비난한다. 당신은 자신의 이미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얼굴을 붉히며 마이크를 떼고 인터뷰를 거부했을 만큼 2002년 구자라트 폭동은 그에게 있어서 아킬레스건이다.

2002년 2월 27일 힌두교 성지인 아요디아에서 돌아오던 성지순례단이 탄 열차가 구자라트주 고드라역에 도착했을 때 불이 나 열차에 타고 있던 힌두교도 등 59명이 숨졌다. 사건 직후 힌두 극우세력들은 구자라트주 모든 상인들의 영업을 금지시켰다. 이후 극우세력들은 주 집권여당인 BJP의 은밀한 지원을 받으며 난동을 저질렀다. 주 총리인 모디는 “테러리스트들이 방화한 고드라 열차에서 우리 형제들이 불에 타 죽었다”라고 말하는 등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힌두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경찰은 힌두 극우세력을 저지하지 않았고, 분노한 힌두교도들이 칼과 도끼로 무장해 무슬림으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알라를 모욕하거나 힌두 신을 찬양하라는 요구를 하고 거부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광경을 지켜만 보았다. 이 사건으로 모두 1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사건 발생 당시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여당인 BJP은 조사위원회를 꾸려 무슬림 폭도가 방화한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2004년 중앙정부와 당시 여당 INC 주도로 꾸려진 또 다른 조사단은 열차의 화재를 방화가 아닌 단순 사고라고 결론 내렸다.

Shri Narendra Modi at the Chief Ministers' Conference on Internal Security in New Delhi

모디의 인도, 그린라이트를 누를까 말까
모디가 인도 차기 총리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인도 증시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인도의 주가지수인 센섹스 지수는 총선이 끝난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7.34%나 급등했다. 인도의 화폐인 루피화 가치도 총선 후 일주일 동안 2.11% 급등했다. 인도에 대한 세계의 기대감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도 국민들은 모디 정부가 구자라트주에서 거뒀던 성과를 중앙정부에서도 과감하고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얻길 바라고 있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모디는 총선 공약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인 항만 인프라 확대, 고속철도 건설, 신규 스마트 도시 100개 건설 등 인프라 개발과 개선을 주요 경제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조업 육성을 통해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인도를 수출 기지로 만들기 위해 기업 대출의 금리를 인하하고, 세금 구조를 단순화 시키며,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신규 산업 기지 건설을 약속했다. 2014/2015 회계연도 GDP 성장률을 5.4%~5.9%로 예상하고 3~4년 이내에 7~8% 성장률을 목표로 삼는 등 갓 출범한 모디 정부의 앞날은 그린라이트로 손이 가는 듯하다.

하지만 쉽사리 그린라이트를 누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인도는 주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국가이다. 외국 자본의 투자 및 인프라 건설 등 경제 성장을 위한 계획의 최종 승인은 주정부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게 주정부들이 따라와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앞으로 모디 정부에 있어서 28개 주와 경제정책 보조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적 행보 또한 걸림돌이다. 헌법상 22개 언어가 공용어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인도에서 인구의 40%만 쓰는 힌디어를 우선하는 정책으로 반발을 사고 있다. 공무원들에게 정부 서한이나 소셜미디어(SNS) 사용 시 힌디어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라는 명령을 내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강한 불만을 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이라크 내전이 복병이 되고 있다. 인도는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으로 원유 수요의 12~15%을 이라크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수급의 불안정과 유가 급등이 인도 경제에 미칠 영향이 변수가 되었다.여기에 부의 재분배 문제에 있어서 모디의 소극적 태도가 중하층의 지지 철회를 야기할 수도 있다.

가계를 위해 홍차를 팔던 소년이 주지사가 되고, 마침내 총리가 되었다. 서구언론들은 모디를 보는 시선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새로운 총리 모디가 ‘구자라트주의 기적’을 넘어서 ‘인도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까?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인도의 4번 타자 모디는 9회 말 2아웃에서 마지막 역전 홈런을 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 자세를 잡았다.

 

2014.8.6

김준석 (경희대 언론정보학)

rejune11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