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쟁’과 ‘자원외교’. 한번쯤 들어봤을 단어다. 20세기 이념 전쟁과 이에 따른 국가간 대립의 긴장이 완화된 지금, 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국가 경제력 제고를 위한 국가간 팽팽 한 줄다리기다. 그리고 이 힘 겨루기의 중심에 석유자원이 있다.
Give Oil, 기름을 좀 주세요 Give Oil, 기름이 모자라요
중국의 경제는 1978년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근 30년간 10% 안팎의 성장세를 이어왔고 2006년부터는 미국을 제치고 최대 외환보유국으로 등극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이뤄진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건설 재료 수요 증가, 교통 수단의 발달, 중산층의 증가를 촉발시키며 중국 내 석유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동아시아 최대의 석유수출국으로 중국 동북부의 다칭, 셩리, 라오허 등지의 유전이 국내 석유 수요량의 70% 정도를 공급했다. 이 덕분에 2차례의 석유 파동이 있던 시기(73년~74년, 78년~80년) 유가 상승에 따른 경제 불황을 겪은 선진국들과 달리 중국은 안정적 석유 자급을 통해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세계적 경제 위기를 넘겼으며, 석유의 전략적 비축에 대한 필요성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기존의 국내 유전들이 성숙됨에 따라 석유 생산량이 정체되었고, 급격한 경제 성장에 동반한 석유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며 해외로부터의 석유 수입이 불가피해졌다.
1993년 석유 소비량이 그 생산량을 초과한 이후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산업의 고속성장과 함께 ‘원자재 블랙홀’이라는 별명을 얻는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석유 자원의 소비가 더욱 크게 증가하며 2000년에는 전년 대비 90%의 원유를 더 수입하기도 했다. 2008년 기준 중국 내 하루 석유 생산량은 약 330만 배럴임에 반해 소비량은 800만 배럴에 달했으며, 2010년에는 석유 자급률이 50%미만으로 떨어져 2억 톤이 넘는 석유를 수입했다.
중국, 누구의 VIP?
작년 3월 시진핑 주석은 취임 직후 탄자니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공화국 아프리카 3개국과 트리니다드토바고, 코스타리카, 멕시코 중남미 3개국을 순방했다. 이와 같은 시 주석의 행보는 중국의 석유 수입량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비OPEC 국가들과의 자원 외교를 통해 에너지 수입 루트를 다변화하고, OPEC 국가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상쇄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를 비롯해 미국에너지정보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EIA)과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Institute Of Energy Economics Japan, IEEJ) 등이 공통적으로 비OPEC 국가들에서의 원유 생산과 수출 증대를 전망하는 상황에서 중국 역시 신흥 시장을 확보하고 자원 교역량을 늘려가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위의 세 기관 모두 2020년쯤 OPEC 국가들은 세계원유공급 시장에서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재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꾸준히 원유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비OPEC국들은 높은 생산비용에 따른 공급의 취약성 문제가 있으나 기존의 OPEC국들은 풍부한 매장량과 값싼 생산단가를 경쟁력으로 중국이 꾸준히 석유를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이다. 중국 내 석유제품의 생산 증가와 1인당 GDP 상승으로 인한 자가용 보급의 확대로 수송원료 부문에서의 연료 수요량 또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견된다. IEA는 2030년 중국의 해외수입석유의존도는 약 74%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 가운데, 세계적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우드멕킨지는 2020년경 OPEC의 원유 수입량 중 중국의 지분은 66%까지 성장할 것으로 2013년 보고서를 통해 전망했다.
석유 이외의 대체재가 있는가
중국과 함께 세계 경제의 거대 축인 미국의 에너지 보급 상황은 중국과 조금 다르다. 미국은 북미 대륙에서의 오일샌드 추출과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송유관 건설 등을 통해 자급적 에너지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 중국 역시 한때 석유 매장량이 800억 배럴로 추산되던 서부 신장 위구르자치구 지역에서 유전을 개발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도시가 발달한 중국의 동쪽 해안지역과 달리 서부 내륙은 유전 개발을 위한 도로, 통신 등의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고 경제 생활이 낙후해 유전 개발을 위한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 개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개발 중인 유전의 불확실한 수익성과 석유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폐쇄적 정책, 무엇보다 신장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정부와 소수민족 간의 무력 갈등 등으로 해외 석유 기업의 투자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경 문제는 중국 내 새로운 유전 개발이 부담스러운 또 다른 이유다. 중국은 여전히 석탄을 가장 큰 원료로 사용하며 화력발전을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중국 환경 오염의 제일 큰 원인으로 지목되며 국내·외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실제, 석탄을 생산하는 지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전체 평균에 비해 10년 정도 짧다는 연구 결과 등이 나오며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다. 따라서 2000년 대 중반 이후 중국 안에서 비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개발이 활발히 이뤄졌으며 수력과 원자력, 풍력과 태양력 발전이 주를 이룬다. 비록 전체 에너지원 중 이들 비화석연료를 통한 에너지 생산량은 미미하나 성장률은 눈 여겨 볼 만하다. 2005년에서 2011년 사이 미국 내 풍력과 태양력을 이용한 전기 발전량 증가율은 각각 37%와 22%에 머물렀으나, 같은 기간 중국의 증가율은 80%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대안일 뿐 지금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엔 경제성과 공급의 안정성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송유관 타고 쭉쭉, 뻗어나가는 중국
중국의 석유 수요와 이용은 2030년까지 계속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러한 수요를 어디서, 무엇을 통해 확보할 것인지는 최근 10년 중국의 에너지외교를 통해 알 수 있다. 2006년 중국은 세계 7위 산유국인 카자흐스탄과의 송유관 건설계약 체결을 통해 카자흐스탄 서부 항구 도시 아티라우에서 중국 서북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잇는 2228km의 중국 최초 국제 송유관을 건설했다. 중국의 서쪽 국경 접경 지역인 카자흐스탄과의 송유관 건설을 통해 중국은 대량의 원유를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고 운송시간·거리·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며 기존의 송유관을 연장해 자원 매장량이 많은 카스피해 연안국들에게서 추가적인 원유 확보가 가능하다. 또한 한국과 일본 등이 이 송유관을 이용하게 될 경우 중국은 이들 국가를 상대로 송유관 이용에 대한 통행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이 노리고 있는 것은 송유관 건설을 서부지역 개발의 촉매제로 이용하는 것이다. 송유관을 시작으로 가스관, 도로, 공항, 발전소 등의 사회인프라 시설을 확충하여 낙후되었던 서부 지역의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를 통해 이 지역의 소수민족을 회유, 내정안정과 지역 내 한족과 위구르족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는 중국의 북쪽, 러시아-중국 간 송유관이 개통식을 갖고 본격 가동되었다. 러시아에서 시작되는 이 송유관 건설을 두고 일본과 10년간 싸우던 중국이 자원 외교전(戰)에서 승리하며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의 지선으로 러시아-중국 간 송유관을 건설 할수 있었다. 이 송유관은 러시아 극동에서 시작 돼 중국 내몽고자치구를 지나 동쪽의 거대 석유도시인 다칭으로 이어진다.
가장 최근의 송유관은 중국의 남쪽으로 뻗어나갔다. 2012년 건설된 중국-미얀마간 송유관은 미얀마 서해에서 시작해 중국 서남부 쿤밍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중국은 2200만톤의 석유를 수송할 예정이고 이와 더불어 미얀마 부두에는 2010년부터 원유 부두와 저장탱크가 건설 중에 있어 중동·아프리카 산 석유를 보다 안정적으로 수송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중동의 원유를 들여오기 위해선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엔 현재 미 해군이 주둔해있어 미-중간 직접적 외교 갈등이 없더라도 해협 봉쇄의 위험이 있어 왔다. 1971년 이후 말라카 해협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의해 공동 관리되고 있으나 이는 명목상에 그치며 실제 해협의 통행과 봉쇄에 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이 곳에 주둔 중인 미 해군이다. 따라서 2003년 후진타오 전 주석은 “몇몇 큰 국가들이 말라카 해협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며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중국-미얀마간 송유관 건설은 미얀마를 중간 기지 삼아 미 해군력을 견제하고, 서남아시아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블랙골드의 가치는? 200% 확신해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소비하는 석유의 양은 앞으로도 계속해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까지의 중국 자원 외교 전략과 그 행보를 살펴볼 때, 중국은 석유 수입 루트를 다각화하고 독립적인 석유 수급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되는 송유관의 건설은 대외적으로 중국이 경제력과 외교력을 팽창하기 위함이며 대내적으로는 신장위구르, 내몽고, 쿤밍 등 소수민족이 대부분을 구성하는 지역을 관리하고 이곳의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일거양득의 전략이다. 석유라는 ‘블랙 골드’를 둘러싼 외교전과 ‘쩐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주량(이화여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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