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평화협력구상, 아시아 패러독스에 대한 한반도의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동북아시아지역의 경제 성장과 시장 확대는 동북아 국가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2015년 8월을 기준으로 일본과 한국은 각각 중국의 제2, 제3 무역상대국이며, 한중 FTA도 올해 발효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 간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갈등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을 ‘아시아 패러독스’라 한다.

북핵문제는 북한이 1980년 핵개발에 착수한 이후 동아시아 안보적 평화 협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왔다. 지금까지 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 4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고, 이를 정권유지를 위한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뿐 아니라 문제 해결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차이도 좁혀지지 않아 북핵은 여전히 국제사회에게 큰 위협으로 남아있다.

21세기 들어 일본사회가 우경화되고 중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안보적 평화협력에는 장애물들이 추가되었다.  과거부터 지속되어왔던 한·중·일 3국간의 역사논쟁은 그 주제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위안부 보상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국의 동북공정, 독도·댜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 등으로 확대되었다. 역사논쟁과 영토분쟁이 3국 관계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어느 때보다 커져 논란이 될 때마다 기능적 협력마저 마비시킬 정도이다.

나아가 미국이 아시아 회귀정책을 펼치면서 아시아 패러독스는 심화되었다.  ‘아시아의 맹주’로 급부상한 중국은, 자국 주도하의 경제 공동체를 조성하여 주변국들을 끌어들이고 있고, 타 국 영토와 영해에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들과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을 견제하는 중이다. 지난 10월 27일, 미국 이지스함 ‘라센’이 남중국해 난사군도(南沙群島)에 위치한 인공섬에 진입하여 중미 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킨 것은 두 나라간의 신경전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런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과의 대립구도를 더 선명하게 그어놓는 중이다. 특히 최근 아베 정권은 미국을 등에 업고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안보법안을 통과시켜 보통국가화 되어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

 

한국의 미래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아시아 패러독스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이 가야 할 길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이는 한국의 주도하에 동북아시아 역내 주요 국가들이 다자협의체를 구성하여, 우선 정치적 협력보다는 기능적 협력이 필요한 환경, 에너지, 재난관리 등의 연성안보이슈부터 대화를 시작해 대화의 범위를 점차 정치적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북핵문제, 영토분쟁 등의 경성안보까지 확대해 나가자는 구상이다.  또한 북한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한반도 이슈까지 해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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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8일 미 의회 연설 중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공식 제안하는 박근혜 대통령

이 구상은 신뢰 외교와 북한 개방유도 정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3년 9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 평가와 모색>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외교부 이경수 차관보는 ‘신뢰외교’를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해, 북한의 높은 수준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북한 개방유도 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유라시아 국제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공식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잘 드러나 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란 세계 최대 단일 대륙이자 거대 시장인 유라시아 국가 간 경제 협력을 통해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만들고, 유라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해 통일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대통령의 구상이다.

2015 동북아평화협력포럼

「2015 동북아평화협력포럼」이 작년에 이어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동안 서울 랜드 힐튼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본 편집위원은 27일 포럼 첫날 직접 참석하였으며,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선 연성안보이슈 후 경성안보이슈 논의’ 색채가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는 인상을 크게 받았다.

 포럼 첫째 날에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몽골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 주요 국가의 중부 인사, 주한 외교사절, 학자, 정책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북아의 평화 협력 증진을 위한 전반적인 여건과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한편,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협력 차원에서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서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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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평화협력포럼이 2015년 10월 27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되었다

포럼 둘째 날에는, 동북아 지역 내 공동 위협요인이 되는 ‘연성안보 이슈’인 원자력 안전, 에너지 안보, 환경, 사이버스페이스, 보건, 마약, 재난관리 분야와 관련하여 분과토의가 이루어졌다. 작년 회의 결과로 실행된 협력 성과를 검토하였고,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설정하였으며 각 분야에 대한 정보교환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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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 정부가 제안했던 협력체제 구상과는 어떤 점이 다를까

사실 동북아 지역의 평화협력 도모 이슈는 최초가 아니며 예전부터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이슈다. 북한을 넘어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며 북방외교를 펼쳤던 노태우 정권은, 그 연장선상에서 동북아에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의 공고한 바탕을 구축하기 위해 1988년 10월 19일 UN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소련, 중국, 일본, 그리고 남북한이 참여하는 〈동북아평화협의회Consultative Conference for Peace in Northeast Asia〉의 창설을 제안했다.

 20세기 후반에는 범세계적인 탈냉전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에 북한의 핵문제와 대량 파괴무기 확산 위협, 중국·대만 간 무력충돌 위험 등 냉전의 유산이 잔존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동북아 지역의 안보환경을 개선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역내국간 다자안보협력의 틀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고,  1994년 5월 ARF(ASEAN Regional Forum) 고위관리 회의에서 동북아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동북아다자안보대화(Northeast Asia Security Dialogue)”를 공식 제의하였다. 이는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의 외무 및 국방부 과장급 관계자가 개인자격으로 참가해 동북아시아의 안보와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로, 미국 캘리포니아, 도쿄, 모스크바, 베이징, 서울, 뉴욕 등에서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와 관련해 동북아평화협력포럼 측은 기존의 제안들의 한계에 대해 분석하고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고유성을 설명하여 홈페이지 Q&A란에 게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기존의 제안들은 국가 간 협력이 어려운 경성안보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고, 정부주도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단기간에 제도화하여 정착시키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추동력을 상실하여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선언적 단계에 머물러야 했다. 또한 동북아평화협의회는 1990년 5월 25일 일본 국회 연설에서 반대 의사를 보인 중국과 북한을 사실상 제외하였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 내 대화와 협력의 틀을 정착시키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제안과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또한 다층적인 접근이 그 특징이다. 기존의 정부 관계 중심의 방식보다는,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 TOP-DOWN 방식과 BOTTOM-UP 방식(실무 차원 및 민간의 협력) 을 동시에 추진하는 멀티트랙 접근을 활용한다. 요약하자면, 민감한 이슈에 대한 논의는 가능한 한 후순위로 미루고 공통 연성이슈를 먼저 논의하여 동북아시아 역내협력의 틀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는데 주안점을 두며, 유연하게 상·하향식 방식을 모두 활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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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뒤에 가려진 한계

협력의 경험과 지역 공동체기구가 결여된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이상적인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성안보 이슈를 먼저 논의하는 것이 어떻게 북핵문제, 한중일 관계 개선과 같은 경성안보 이슈로 연계되어 아시아 패러독스가 해결에 접근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는 2011년에 서울에 설치된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은 TCS를 중심으로 정치적 부침에 상관없이 각종 정부 간 협의체를 개최하고, 3국 간 협력사업을 발굴하는 등 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중일 협력 프로세스는 정작 한중일 간에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은 논외로 하였기 때문에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협력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지역 평화와 안보라는 보다 큰 틀의 협력구상과는 연계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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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 (사진 출처 chosun.com)

이에 대한 우려는 포럼 첫째 날 ‘동북아평화협력 증진방안’을 주제로 열린 대사급 테이블에서부터 나타났다. 알렉산드로 티모닌 주한 러시아 대사는 냉전의 유일한 유산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으며, 공동으로 안보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분야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문제 삼기도 했다. 하오샤오페이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도 경성정치 안보 문제와 연성문제가 동시에 논의되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며 그는 6자회담의 재개를 통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얘기하였다.

또한 궁극적인 목표를 북한의 자발적 개방을 통한 평화 통일에 두고 있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앞으로도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동북아 갈등의 본질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한계점이 이토록 일찍 드러난 이유는 정부가 동북아 갈등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가장 큰 원인은 다자간의 협력의 습관이 부족하고 상호 의존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 서로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있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가 청산되지 않았으며, 다자간의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제를 해결할 중재자나 공동체 기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행 방식으로 주변 여러 국가들을 끌어들여 무조건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방식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갈등의 원인에 초점을 두고 우선 양국 간의 직접적인 소통 확대를 통해 상호 이해를 추구하고 내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국 간의 이해가 이루어지면, 복잡하게 얽혀있던 다자간의 이해관계도 단순해질 것이고, 진정한 다자간의 협력의 여건도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 간 역사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양국 정상이 과연 만나서 직접적인 해결을 하려 했는지, 양국 정상회담은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 이해가 충분히 달성되고 아시아 패러독스의 원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무조건 적인 협력 다자체를 우선시 하는 것은 협력을 위한 협력에 불과하다. 자칫 불필요한 논의의 크기를 부풀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원인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기존 동북아 협력구상과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전통적 안보이슈들을 다뤄왔던 기존 구상들의 틀을 깨고 연성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우선시 하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며 미국, 중국, 일본의 패권 싸움으로 대변되는 동북아 정세에서 평화협력의 주도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한 구상이다.

 하지만 이번 구상은 동북아시아 내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섣불리 협력의 크기만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긴 여정이 되겠지만, 동북아시아 역내 정치적 갈등의 원인에 초점을 두고 개별 국가들 간의 직접적이고 속 깊은 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럽이 세계대전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을 해결하고 진정한 협력의 장인 유럽연합을 결성한 사례에서처럼, 동북아시아도 진정한 기능적·정치적 평화협력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의 참여를 유도할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아시아 패러독스에 대한 한반도만의 해답이 될 수 없을 것이고 ‘평화통일을 위한 환경조성’이라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정상교(성균관대 중어중문)

skj58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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