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남해 9단선: 전략 잠수함의 국제정치학

현 시대에 세계에서 우발적인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리스트를 만든다면, 아마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 반도 그리고 중국에 둘러싸여 있는 남중국해(South China Sea)가 상위 후보군 내에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1968년 『UN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남중국해에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분석이 공개된 이후, 남중국해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해양 분쟁 지역으로 변화해갔다. 현재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까지 8개의 당사국들이 해당 분쟁에 관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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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당사국들 중 가장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행보를 보이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과거 왕조들의 역사적 권원을 토대로 하여 자의적으로 경계를 획정한, 이른바 남해 9단선(Nine-dash Line)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해왔다. 중국의 행보는 단순히 관할권 주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에 의하면 중국은 자신들이 점유한 인공섬들에 군사용 비행 시설과 레이더 시설을 건설하는 등, 해당 지역의 군사화를 추진하는 중이다. 이는 자신들이 ‘핵심 이익 지역’으로 분류한 남중국해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강화 시켜 나가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어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강대국의 최종병기, 전략원잠(SSBN)

그렇다면 중국이 해당 지역에서 이렇게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프래틀리 군도와 파라셀 군도 해저에 매장된 막대한 지하자원의 확보, 해상교통로의 장악을 통한 지역적 패권 창출 등 다양한 원인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필자는 미-중 대결구도라는 차원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이 갖는 군사전략적 의의를 중심으로 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와 전략 원잠(SSBN[1])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이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호확증파괴란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양측 모두가 확실하게 파멸할 가능성이 높을 경우,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 유지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상대방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게 된다는 국제정치학적 개념이다.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전략 균형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2차 공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의 확보라는 핵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확보 시도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2차 공격능력은 상대방으로부터 선제 핵공격을 당하더라도, 전력을 보존해 대량 반격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감당 불가능한 피해를 강요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핵 억지 전략을 구사하는 강대국들은 상대방의 선제 공격으로부터 생존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핵 전력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군비를 투자한다.

일반적으로 전략원잠은 2차 공격능력의 확보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무기체계로 평가된다. 다량의 핵미사일을 탑재한 채 수중에서 은밀하게 상대방의 심장부를 노릴 수 있는 이점을 갖기 때문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공식적인 핵보유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모두 전략원잠을 실전배치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는 전략원잠이 강대국의 국제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는 점을 증명하는 셈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과의 전력 격차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핵 억지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략원잠 전력의 구축에 힘써왔다. 지상에 배치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들은 유사시 미국을 비롯한 가상 적국의 선제 핵타격에 의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지도자 마오 쩌둥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통해 중국의 안보와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전략원잠의 개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우리는 원자력 동력 잠수함을 개발해야만 한다, 비록 그것이 10000년이 걸릴지라도.”

중국 전략원잠의 수중(水中) 요새

중국의 남중국해 지배권 확보 시도와 핵 억지 전략이 맞닿아 있는 연결고리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전략원잠들이 실질적인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강력한 감시능력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분석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수중 핵 억지(Underwater Nuclear-Deterrence) 능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미국과의 전략 균형을 달성할 정도로 발전되지 못했다.

jin_type_094_class_ballistic_missile_submarine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진(Jin)급 전략원잠

 첫째, 중국이 현재 실전배치한 4대의 진급 전략원잠은 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은밀성이 떨어진다는 기술적인 문제를 갖는다. 2009년 미 해군정보국(ONI)이 중국과 러시아/구소련의 잠수함들을 분석한 결과, 12 종류의 잠수함들 중 진급 전략원잠이 4번째로 가장 탐지되기 쉬운 잠수함으로 분류되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70년대에 건조한 전략원잠보다 더 정숙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은밀성은 전략원잠의 생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문제는 중국의 수중 핵 억지 능력에 있어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의 최신형 SLBM인 JL-2가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이를 탑재한 전략원잠이 기지를 떠나 중태평양 해역까지 ‘탐지되지 않은 채’ 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중국의 잠수함 전력에 대응해 아시아에서 광범위한 정보, 감시, 정찰 활동의 지역 통합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2월 미 해군은 최신형 대잠초계기인 P-8A를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 배치했고, 그해 4월 대만 해군은 자신들이 보유한 대잠초계기 P-3C를 남중국해 정찰 활동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외에 일본과 베트남 역시 그들의 대(對)잠수함 작전 역량의 증진 작업을 추진하는 중이며, 필리핀은 일본과 미국의 지원 하에 독자적인 대잠수함 정찰 능력을 건설하는 중에 있다. 이들이 미국의 지도 하에 통합적인 대(對)중국 수중 감시망을 형성하게 된다면, 중국의 전략원잠 세력은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즉 은밀성이 떨어지는 중국의 전략원잠 세력이 미국 주도의 잠수함 감시망에 포위됨에 따라, 이들의 실질적인 활동 반경은 전략원잠 기지가 위치한 하이난다오 근해로 한정되어버린다. 전략원잠의 활동 반경이 근해에 한정된다면 그 전략적 효과 역시 크게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SLBM의 사정거리 면에서도 미국에 대해 유의미한 전략적 억제 효과를 가져가기 어렵고, 좁은 활동 반경은 예측 불가능한 위치에서 상대방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다는 전략 잠수함의 이점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ec%ba%a1%ec%b2%98중국의 전략원잠 기지가 위치한 하이난다오(Hainan Island)

 하지만 만약 중국 전략원잠 세력이 남중국해를 일종의 수중 요새로 활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획득하고 미군 감시세력의 접근에 대한 거부능력을 확보할 경우, 중국의 전략원잠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 가능한 공간을 갖게 된다. 남중국해의 인공섬에 배치된 레이더 시설은 주변에서 접근하는 타국의 항공기나 선박을 감시하는 용도로, 활주로 시설은 기존에 중국 본토에서 출격하던 군용 항공기들이 이 인공섬들을 기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용도로 활용 가능하다. 여기에 추가로 남중국해에 지대공(Air-to-Surface) 미사일 전력이 배치되어 유사시 타국 군용 항공기의 접근을 차단하고, 현재 중국이 추진중인 A2/AD(Anti-Access/Area Denial) 전략[2]을 통해 제 1도련선 내에서 미 해군 함대의 영향력을 축출할 수 있다면 해당 지역에 대한 미군의 대 잠수함 작전능력은 상당부분 약화된다.

현재 미국이 남중국해와 그 주변 지역에서 상당한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분명 중국 지도부의 전략적 목표를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제약조건들이 해결되어 중국의 전략원잠들에게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고 이들이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미 본토에 SLBM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보한다면, 중국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핵 억지력을 달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마오 쩌둥의 숙원이었던 “더 강하고 자주적인 중국의 건설”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불안정한 남중국해의 미래

중국은 미국에 대한 핵 억지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전략원잠 세력 육성에 자원을 투입해 왔고, 전략원잠과 SLBM의 기술적 성능 향상과 더불어 잠수함 세력의 실질적인 활동공간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어왔다. 이는 과거 냉전 후반기 구 소련 지도부가 직면해야 했던 고민과 유사하다. 냉전 초기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던 소련의 전략 잠수함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대된 미 해군의 원거리 무력 투사능력으로 인해 대양에서의 작전을 수행하는 데 큰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소련은 냉전 후반기에 들어 유라시아 대륙 북쪽에 위치한 광대한 해역을 활용해 제한적이나마 전략 잠수함들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중국 역시 미 해군의 압도적인 재해권이라는 제약 조건 속에 그들의 전략잠수함이 자유롭게 활동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며, 남중국해가 바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남중국해는 단순히 도서 영유권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분쟁 지역 차원을 넘어 중국의 현상타파 시도와 미국의 현상유지적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전략적 추축 지역(Pivot Area)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다. 물론 전략잠수함이라는 키워드가 현상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진 못하겠지만, 강대국의 국제정치라는 측면에서 남중국해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역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 퍼즐 조각을 검토해본 바에 의하면, 중국이 핵 억지 능력이라는 자신의 전략적 핵심 이해관계와 관련된 남중국해 지배를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 Ship Submersible-Ballistic missile-Nuclear

[2] 대함 탄도미사일(Anti-Ship Ballistic Missile)을 활용해 동아시아-서태평양 해역 내에서 미 해군의 접근을 거부하거나,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전략


김지훈(연세대 정치외교)

peter9245@gmail.com